동대구역건너역

by 꼬드kim

찌는 듯한 무더위를 예상하고 나왔는데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다. 민소매를 입었는데 오늘 하루 괜찮을까를 고민하느라 발걸음이 더디게 움직인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을 타는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온다. ‘카디건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그걸 버리고 나왔어!’ 목적지가 대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과감하게 출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조금 더 먼 수서역에 도착했다. 이용해 볼 기회가 없었던 SRT를 체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좌석 간의 공간이 넉넉해서 좋았는데 간접등으로 인해 아침부터 저녁시간으로 접어든 기분이었다. 개인 조명을 켜보지만 역부족이다. 흔들리는 기차 리듬에 맞춰 명상을 하는 수밖에. 어제 잠깐 본 드라마 우영우와 회전문이 생각난다. 몸치인가? 쉽게 맞춰지지 않는다.

동대구역에 내려 지도 어플에 나온 버스 정류장 명칭에 잠시 멍해졌다. “동대구역건너?” 지도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번 대구행은 준비 없이 출발한 터라 “건너”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 못 하고 쩔쩔맨다. ‘이 드넓은 곳에서 역 건너는 어디를 뜻하는 걸까? 차라리 동서남북 표시가 나으려나??’

나의 특기인 질문을 하지 않고 무사히 동대구역건너에 도착해서 버스 노선도를 들여다보니, 유난히 건너 역이라 표시된 부분이 많다. 왜 이런 걸까를 생각하다 보니 건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울의 버스 정류장 명칭이 궁금해졌다.

버스가 들어오고 기사 아저씨는 마지막 승객인 내가 타자마자 질주를 하셨다. 주말의 서울 시내도 이럴까 싶을 정도로 대구의 도로는 차들로 정신이 없었다. 아저씨는 시간을 맞추려고 계속 경적을 울렸고 차선을 이동하는 아저씨의 조바심을 나 또한 불안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내내 긴장한 나머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온다. 아침에 출발한 여정은 점심때가 되어 도착하고 근처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검색하다 보니 죽집을 추천한 콘텐츠가 많았다. 주말이니 운영을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머! 아저씨네! 3대째가 꼭 할머니 아주머니를 뜻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놀라서 질문을 잊어버렸다.

“여보세요!”

“아 거기 가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멀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후문 물어보시고 거기서 쭉 들어오세요.”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커녕 사람 자체가 없다. 한참을 헤매다 아저씨 한분에게 질문을 했더니 후문은 잠겨서 저쪽으로 돌아가란다. 뜨거운 뙤약볕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냥 가는 수밖에.

갑자기 전화가 온다.

“아직도 못 오고 어디예요?”

“아! 후문이 잠겨서요. 돌아가래요.”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예요? 내 나갈 테니!”

“아! 아니에요. 제가 찾아갈게요. “

장사하고 계시는 분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금 더 부지런히 걸어가려고 했으나 더위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조용한 시장 골목을 휘적휘적 걷다 보니 드디어 도착했다.

아저씨가 뭐라고 질문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찹쌀 수제비와 호박죽 중에 어떤 것이 더 맛있냐고 물었더니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사실 멀미와 더위에 몸이 안 좋긴 했지만 난 맛있는 것으로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죽은 아플 때 먹는 건데요?”

“그렇긴 한데 맛있는 게 먹고 싶어요.”

아플 땐 더 맛있는 걸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럼 호박죽 먹어요. 찹쌀수제비는 2인분은 되어야 맛있어요.”

사실 수제비가 먹고 싶었으나 가게 앞 그릇들에는

팥죽, 영양죽, 호박죽 등이 있어서 그냥 그러겠다고 했다. 얼마 후 두 명의 여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내가

느끼고 있던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아저씨가 아주머니들과의 대화 속에 나를 끌어들였다.

“아니 저렇게 덩치가 큰 사람이 헤매고 빙 돌아서 왔대요! “

‘타인과의 주제로 삼을 만큼 빙 돌아온 것이 이슈인가? 아님 나의 큰 덩치가 이슈인가?’

그 순간 나를 쳐다보는 세 사람의 시선은 다시금 나를 긴장의 순간으로 밀어 넣었다.

“아! 음, 그게…”

꽤 충격이었나 보다. 아직도 내가 뭐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목소리가 작길래 덩치도 작은 줄 알았지요. 호박죽 작으면 얘기해요. 더 줄 테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순간 웃음이 피식하고 났다. 아마도 내 외형은 덩치도 큰 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소화력 부실로 남겨야 하는 양이었으나, 남기면 덩치도 큰 사람이 부끄러움 탄다고 할까 봐 한 그릇을 비우고 나왔다. 타들어가 버릴 듯 한 더위를 피하려고 근처 카페를 검색했으나 가까운 곳에는 없는 듯하다. 그러다 발견한 곳. 커피를 마시러 들어왔으나 메뉴를 보니 왠지 차를 마셔야 할 것 같다.

나의 오랜 고민과 느린 결정 끝에 차 한 잔을 시키고 앉아 잠시 쉰다. 지하 공사 때문에 시끄러워 미안하다며 강정까지 챙겨주신다.

의외의 두 장소, 죽집과 찻집. 그들의 따뜻한 말 덕분에 대구의 색다른 면을 발견한 것 같아 여행자 모드를 잠시 누려본 찰나의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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