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치 중에 열무김치를 가장 좋아한다.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밥을 슥슥 비빈 다음, 열무김치를 척- 올려 먹으면..
오늘 도착하기로 한 택배가 내일 온다고 해도 괜찮을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뿐이 아니다.
육즙이 가득한 소고기를 먹고난 후, 또는 쫀득쫀득한 비계가 붙은 삼겹살을 먹은 후에
개운~하게 열무국수로 마무리하는 상상은
나의 이성과 절제력을 파괴시켜 당장 먹지 않고선 버텨낼 수가 없게 한다.
그럼 뭐해....
파나마엔 열무가 없다.
열무 잔뜩 넣은 비빔국수가 먹고 싶지만, 이곳엔 열무가 없다..
열무가 없다면 잘 익은 김치를 넉넉하게 썰어 넣은 비빔국수가 그 다음으로 좋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집엔...김치가 다 떨어졌다.
국수에 넉넉하게 썰어 넣을 김치는 없다.
그래서 매콤새콤달콤한 비빔국수가 당길 때면 조금 난감해진다.
"비빔국수가 먹고 싶어??"
"응.. 새콤달콤하게! 아..침 고인다.."
"흠..알겠어! 기다려봐."
출산을 한 달 앞둔 만삭의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은 어떻게든 만들어주려는 남편이다.
김치가 없다고 비빔국수를 포기하지 마라....
김치가 없어도 비빔국수는 맛있을 수 있다.
양상추, 토마토, 오이, 버섯이 잔뜩 올라간
김치 빠진 비빔국수는 더 풍부한 맛과 화려한 식감을 뽐낸다.
게다가 남은 김치만두를 탈탈 털어
사이드디쉬로 내어 놓는 남편의 센스에!
남부러울 게 없는 식탁이다.
나는 오늘 나의 첫 직장 상사가 나에게 주입시키던 그 말이 떠오른다..
채리씨, 사람이 하는 일에 안 되는 건 없는 거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알겠어??
남편의 레시피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설탕, 식초, 다진마늘로 양념장을 만든다
소면은 5분 정도 삶아서 얼음물에 헹군다
소면에 양념장,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잘 비빈다
집에 있는 다양한 채소를 활용하여 예쁘게 토핑으로 올린다
아내가 사진을 다 찍고나면 무자비하게 토핑과 국수를 다시 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