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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May 29. 2020

오류가 없는 편지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너의 댓글들을 즐겁게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 남해 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에서 "다녀와서 사진 보여줄게"라는 문장에 까닭모를 벅참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제서야 비로소 진정한 국제펜팔을 하는 기분도 들고 말이야. 정말로 우리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편지를 주고 받는 기분이 들면서 마치 사진이 한 장 동봉된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아니면 어릴적 아빠가 일본 출장을 다녀오며 좋은 문구용품을 선물로 사오시진 않을까 기대하는 기분이랄까(우리아빠는 어느나라로든 출장같은 걸 가신 적은 없지만). 'sns에 사진 올릴게'가 아니라서 그 문장이 유난히도 반갑다. 네가 여행한 남해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곳을 여행하고 왔을까.. 괜히 나까지 설레고 궁금해져. 이곳도 얼른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파나마에서도 가보고 싶은 곳이 무척 많은데.


파나마는 코로나로 인한 제한들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어. 이곳의 코로나 실정이 나아지고 있어서는 절대 아니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올스탑 상태로 둘 수는 없으니 경제 때문에 조금씩 단계적으로 제한을 해지하는 건데, 6월 1일부터는 전면 통행금지가 야간 통행금지로 축소 돼. 공원이나 아파트 공용시설도(수영장, 놀이터 등) 문을 연대. 그동안 갇혀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흘러 나올지 걱정이라 우리는 아마도 계속 집콕을 할 것 같아. 그렇지만 통행금지가 야간으로 제한되면서 아마도 이른 아침에 사람 없는 공원을 산책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 그리고 소아과 의사랑 만나서 시호 예방접종을 맞힐 수 있게 되었고 이사갈 집도 둘러볼 수 있게 되었어. 아마 하루쯤 날을 잡아서 시호를 시누이 집에 맡기고 찜해둔 집들을 좀 둘러보면 어떨까 싶어. 아무 이벤트 없이 석달을 지낸 터라 집구경 가는 게 무척 흥분돼. 


지난 편지에 내가 국밥을 끓여서 깍두기를 먹을 거라고 했었지? 내 인스타나 블로그에서 이미 봤겠지만, 깍두기 맛은 정말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맛이었어. 전형적인 국밥집 깍두기의 맛! 마치 국밥집에서 15년쯤 주방 아줌마로 일한 경력이 깃든 듯한 맛이었다구. 배추김치의 실패로 조금 의기소침했지만 깍두기로 자존감을 아주 정수리까지 끌어올렸지 뭐니. 게다가 오늘은... 놀라지마. 슈퍼에서 돼지 족을 발견했어! 미니족과 허벅다리 살인데 슈퍼에 갈 때마다 찾았지만 없었거든. 오늘 드디어 사왔어. 난 오늘 밤 여러 레시피들을 보며 공부해서 내일 족발을 삶아 먹을 거야. 아.. 나는 좀 성수족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과연 내가 만든 족발은 어떤 맛이 나려나~ 내일 먹을 족발을 생각하니 너무 행복해져서 오늘밤은 시호가 이앓이로 자다 깨서 악을 쓰며 울어댄다고 해도 시호의 짜증을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족발을 성공하면 다음 편지에 족발 사진 보여줄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해 여행 안전하게 잘 다녀오고, 너의 다음 편지 기다릴게!


p.s. 와.. 나 지금 엄청 놀란 게 글을 발행하기 전에 '맞춤법 검사'를 눌렀는데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떴어. 대박! 저거야 말로 '오류'가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드네.. 아무튼 그럼,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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