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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Sep 22. 2020

인생 참..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이구나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도연에게.


푸하하하. 주민신고로 경찰까지 출동했다니! 나도 딱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는데, 신규 공무원 연수받으러 가서였어. 3주짜리 연수인데, 연수 마지막 주였던가? 나가서 술을 아주 늦게까지 마셨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주를 멈출 마음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3차쯤에는 편의점에서 술을 사다가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마셨어. 술도 취했고 연수도 무사히  끝나가고 다른 지자체 신규 공무원들이랑 이제 좀 친해지기도 했고.. 목소리 볼륨 조절이 될 리가 있나~ 다들 떠들썩하게 마셔대는 중에 경찰이 왔어. 그 경찰은 우리의 존재를 단번에 알고 있었을 거야. 이런 신규 공무원들이 한둘이었겠니? 매달 새로운 기수들이 올 때마다 겪는 일이었겠지. 우리한테 와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알만하신 분들이 이러시면 안 되죠~"라고 했는데, "네... 죄송합니다.."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도 너희와 비슷했어. 목소리 볼륨을 두어 단계 줄인 상태로 계속 놀았다는 얘기지. 음.. 그러니까 이건 너의 결론이 잘못 추론됐음을 시사해. 꼭 서울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 아닌가 봐. 왜냐면 연수원이 충남 공주였거든.... 너 시골집 얻어서 이사를 가더라도 조심해야 할 것 같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나마는 소음에 참 관대한 편이야. 금, 토에는 새벽까지 소란스러운 걸 당연히 여기곤 하지. 코로나 이후로는 파티 같은 것들을 자제하고 있으니 지나치게 시끄러운 적은 없었는데(그렇지만 우리 옆집은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엔 손님을 초대하지 않더라도, 마치 주말에 대한 의식이라도 치르 듯이 아주 빵빵하게 음악을 틀어둬서 우리 집에서도 음악 감상을 같이 할 수 있단다), 예전 집에 살 때엔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바로 앞 아파트의 social area(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간인데 주로 놀이터나 수영장, 헬스장, 파티 등 모임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가 5층이었나 봐. 우리 집도 5층이었어서 안방에서는 창문을 열면 수영하고 있는 사람 얼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었지. 금요일 밤만 되면 파티장에 마리아치(넓은 챙이 달린 멕시코 모자를 쓰고 남자 몇 명이서 멕시코 민속 음악을 연주하는 그런 건데, 마리아치에 대해선 검색을 한 번 해봐 주련)까지 불러다가 새벽까지 연주를 해대는 거야!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저래!"라고 말하던 나도 어느샌가 '아. 주말이 왔네?' 하고 넘어가게 되더라고. 


어제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봤어. 순전히 배우 박정민의 연기를 보고 싶어서 본 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박정민의 연기가 하드 캐리 하는 느낌이었어! 너도 그 영화 봤니? 파나마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 보면 예의가 아닌 걸로 느껴질 만큼 영화 내내 파나마 타령을 하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만, 대사 중에 "파나마 날씨도 좋고~"라는 대사에서 날씨 좋음의 기준이 무엇인가.. 조금 의아했어. 한국은 네 말대로 완연한 가을이 왔더구나. SNS를 보면 가을 하늘과 쾌적한 날씨에 모두가 감탄하며 환희를 느끼는 것 같았어. 우리 언니는 강원도로 캠핑을 갔는데 보내온 사진에 단풍도 지고 있더구나(역시 강원도..)! 그런 걸 보며 나도 한국의 가을 냄새가 부쩍 그리워지더라. 그나저나 너는 강원도에 집을 보러 다녀왔는지 궁금하구나. 적당한 집이 있었는지.. 그곳의 농가 시세는 어느 정도 하는지도(뭐 내가 알아서 뭐할 건가 싶긴 한데 ㅋㅋ).


나의 지난주는 위경련, 몸살, 생리통으로 엉망진창이었어. 아프면서도 김치를 담가야 했고(절여둔 배추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므로), 시호의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지. 물론 오빠가 많이 도와줘서 함께 했지만 혼자일 때처럼 편하게 아플 수도 없는 사실이 조금 서글프더라. 하긴 또 혼자일 땐 혼자인데 아파서 서글프곤 하지.

인생이란 건 참..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이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금 전, 와인을 마시며 에쿠니 가오리가 쓴 여자 편 '냉정과 열정 사이'를 다 읽고 이제 막 책을 덮은 참이야. 내가 파나마에 온 후로, 특히 이 집에 이사 온 후로 와인을 자주 마셨거든? 와인을 마시다 보니 깨달았어! 와인은 절대 소주만큼 흥을 오르게 해주지 않아. 소주는 말이야... "아, 한 병만 더 마실까?"라는 말을 자꾸 하게 되거든. 내가 이미 많이 먹음을 알지만!! 근데 자꾸만 한 잔 더 먹고 싶어 지거든. 그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 반면에 와인은 한 병을 비우고 나면 흥이 오르기는커녕 몸이 무거워져서 피로감을 느껴. 이제 그만 누워 자고 싶다고 생각하지. 응.. 맞아. 지금 내가 피로감을 느껴서 이만 자러 간다고 얘기하는 거야. ㅋㅋㅋㅋㅋㅋ 이번 주 어느 날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영화로 볼 거야. 그러고 싶은 소설이더라구. 


그럼 답장으로 너의 지난 주도 들려주련!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날씨 좋은) 파나마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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