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햄(Mayhem, 2017)>
언젠가는 패기 넘쳤던 변호사 데릭. 성공을 위해 열심히 구른 결과로 꽤 괜찮은 위치까지 올라왔지만, 일 말고는 할 수 없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야지. 이제 이 삶이 익숙하기도 하다. 취미 같은 건 필요도 없고, 가족한테는 진짜 다음엔 만나러 간다고 대충 답장하고, 상사 눈치 보면서 고객 좀 가리고, 서류나 들춰보고. 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 않겠냐 이거야.
하지만 그리 다짐한 것도 잠시, 상사에게 모함을 당해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다. 제 탓도 아닌 사고를 사장 최애 직원 대신 뒤집어쓰게 된 것. 따지려고 했지만 역시나 사장도 한 패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항의를 해봐도 돌아오는 건 모욕과 헛소리들 뿐.
그렇게 회사에서 쫓겨나고 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뭐? 사내에 분노 바이러스가 퍼져서 출입이 통제된다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지금 나가야 되는데 회사에 갇혔다고? 젠장, 이게 무슨 일이람.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는 코카인 중독자가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미쳐 날뛴다던데.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바깥으로 분출돼서 아무나 줘패고 다닌다고 유명하다. 누구보다 데릭이, 그리고 이 회사의 직원들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다. 최초의 환자를 변호해서 무죄로 만든 게 바로 이 잘난 회사니까. 에휴, 사장놈은 어떻게 하려나. 뭐? 바이러스고 나발이고 아랫것들은 일이나 하라고 했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회사 안이 개판이 나게 생겼는데요? 뭐예요! 항의, 항의하겠습니다! 네? 닥치라고요? 잔뜩 두들겨 맞아 지하에 감금된 데릭.
맞은 것도 억울한데 바이러스까지 감염된 데릭은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지하에 갇혀 점점 분노에 사로잡히는데. 하, 나를 그렇게 대하셨겠다! 그래, 나도 화났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 누구도 아니고 이 회사에서 만든 선례이고, 자신 또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변호사 중 한 명이다! 무엇보다 빠져나갈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라, 이 말이야. 그러니까 회사에서 옮아버린 나도 면책이란 말씀이지. 그럼 뭐다? 복수다! 복수를 결심한 데릭. 이 나쁜 놈들, 기다려라! 그는 회사의 다른 피해자 중 한 명으로 함께 지하에 감금되어 있던 여자, 멜라니와 함께 무기를 장착하고 상사와 사장놈이 있는 위층으로 출발하는데.
거참, 복수하기 좋은 날씨구만!
<메이햄>은 좀처럼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극단적 상황 속에서 감정의 브레이크를 해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형이라고만 보기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분노의 방향은 꽤나 명확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모욕, 억눌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정상’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작품에서 회사라는 공간은 더없이 과장되어 있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그리고 그 위를 향한 발악이자 혁명의 개시, 억압의 타파가 바로 <메이햄>의 주제다. 타인의 감정이나 윤리 따윈 신경쓰지 않고 일과 노동, 욕망만을 강요하는 이곳에서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상급자들, 그 틈을 찢는 것은 가장 아래, 아무도 관심없는 인물들인 것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흔하기 그지없는 내용이겠지만, <메이헴>은 이곳에 ‘분노 바이러스’와 ‘법률’이라는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신선하고 개성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또한 게임 같은 연출도 이 작품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부분 중 하나다. 책상을 넘어 회의실, 그리고 최상층의 이사회실로 올라가는 여정은 레벨 디자인이 굉장히 잘 이루어져 있어서 일종의 액션 퍼즐 게임 같기도 하다. 게다가 작품을 이루는 작은 효과음 하나하나까지 리듬감이 넘쳐서 시스템 클리어와 타격의 쾌감을 진하게 선사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스테이지는, 웃기면서도 통쾌한 방식으로 이 불합리한 세상에 ‘한 수’ 던지는 장면으로 완성된다.
탑다운 구조의 부조리와 억눌린 분노가 뒤엉킨, 회사라는 ‘현실적인’ 전장. 그리고 그 시스템을 돌파하는 통쾌한 일격! 이 현실을 살아가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생각한 적 있을(너무 잔인한가?) 장면들을 유쾌하고 호쾌하게 풀어낸 작품, <메이햄>. 추천, 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