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대표들이 선출돼 당선자 공고를 하던 날, 박 이사가 헐레벌떡 관리사무소로 달려와서 물었다. "나는 투표도 안 했는데 갑자기 당선자 공고가 났네...?" 특유의 억양에 실린 그의 말과 몸짓에서 어딘가 허전하고 허망한 심기가 느껴졌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섭섭한 감정이 배어 있는 듯한 표정이 살짝 읽혀 가슴이 멈칫했다. 약간의 해명과 더불어 그렇게 된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하였다. "네~, 이사님 선거구에서는 출마자가 없어서 투표를 하지 않았어요. 투표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다시 출마하실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선거구에서도 출마자가 없어서 투표가 없었고, 따라서 규약상 정원을 다 채우지는 못하였다.
사실 후보 등록자가 아무도 없어서 출마 좀 하시라고 사전에 전화연락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아집이 강한 성격인 데다가 내년이면 여든이 되는 고령인지라 이제는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이사는 예상과 달리 다시 출마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아예 권유를 하지 않았다. 싹을 자를 수 있을 때 단호하게 잘라야지 - 그것도 전혀 표시 안 나고, 소리 없이 할 수 있다면 더더욱 - 하찮은 인정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선거업무 주관은 당연히 선거관리위원회가 하지만, 의결사항 등 각종 공고문을 게시하는 일은 관리소장이 담당하기에 그 소상한 내막에 정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박 이사는 선거 공고문이 붙은 줄도 몰랐고, 읽어보지도 않았다며 투덜거리듯 아쉬운 속내를 드러내다 말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임기가 2년인 동대표는 중임(重任)할 수 있다. 연속으로 이어서 하든, 쉬었다가 다시 하든 상관없이 두 번까지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두 번만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장기집권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과거의 폐단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경험과 교훈의 산물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출마자가 아무도 없는 선거구라면, 그런 경우에 한하여 중임한 사람이 다시 출마할 수 있는 예외 규정도 있기는 하다. 대체적으로 단지마다 출마 희망자가 많지 않은실정이다 보니 일각에서는현행 중임제를 철폐하자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는하지만, 아직까지는 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선거가 끝나고 며칠 후 오전, 박 이사가 편안한 모습으로 관리사무소에 왔다. 창이 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두터운 잠바 차림이었다. 이제 임기도 끝나가고 한 번 더 출마할 기회마저 사라진 마당에 평범한 박 영감으로 돌아간 분위기가 느껴졌다. 서서히 내 책상 앞으로 걸어와서 나와 눈동자를 마주치고서는 다소곳이 말을 걸었다. 40년 이상 설비업에 종사하면서 만났던 온갖 사람들에 관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내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크든 작든 하나라도 공사를 따내려고 하다 보면, 그때마다 슬그머니 뒷돈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고령의 나이에도 손에 익을 대로 익은 기술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그는 그저 용돈벌이 삼아 쉬엄쉬엄 일을 나간다고 했다.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제는 아마도 담당자에게 막걸리값, 휴가비 등의 명목으로 뒷돈을 미리 알아서 챙겨주는 센스와 노련미를 잘 갖췄다는듯이 보였다.
이 양반이 내 앞에서 왜 이런 말을 자꾸 하는 것인지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과거 공직에 있었기에 너도 그랬을 것 아니냐고 넘겨짚는 것일까? 아무래도 상대할 기회가 많았을 관리소장들은 다 그렇더라. 당신이라고 뭐 별 수 있겠냐며 나를 떠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나에겐 사뭇 생소하고 언짢은 말로 들렸지만, 그러려니 하고 들으며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평생 세상이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아온 인생인데 그게 어디 쉽게 사라지겠는가. 박 이사가 들려주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간이 콩알만 하고 밴댕이 속처럼 소심하게 살아온 나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해 먹어도 저 놈은 죽어도 그렇지 못할 거라는 친구들의 핀잔도 떠올랐다. 이제는 후일담이 되고 말았지만, 지나고 보니 그저 순진하고 성실하게만 사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넘치게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딱 먹고살 만큼은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 점은 아내도 공감한다.^^ 월급이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에 비하면 많지만, 먹고 살기에는 부족하다던 철학자 백종현 교수의 말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참 동안 들려주던 얘기 끝에 박 이사는 나에게 비수 같은 말을 던지고 돌아섰다. 혹시 그것이 나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소장님, 당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텐데 그 학교 나와서 여기 앉아 관리소장 하는 것 보면, 세상 잘못 산 거여. 바보로 산 거라고." 엉뚱하게 튀는 말을 듣고 나는 순간적으로 말 문이 막히고 말았다. 박 이사의 눈으로 보자면, 내가 공직에서 물러난 지금쯤은 부족함 없이 떵떵거리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즐겨야 제격일 것이다. 이렇게 나와서 힘들게 일하는 건 그동안 잘 못 살아온 결과인 것이다. 나는 박 이사가 사라져 간 출입문을 멀거니 바라보며 내가 정말 바보인가 생각에 잠겼다. 오로지 세상을 그렇게만 바라보는 박 이사의 눈초리가 안타깝기만 하였다. 그냥 웃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어디를 가든 주변의 사람들은 왠지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오늘도 확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쁘지는 않아. 좋게 봐주는 면도 있으니까.'
정년을 앞두고 있던 시절, 퇴직하면 골프 치고 여행이나 하며 여생을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동료들끼리 나누던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다 아는 얘기지만, 어디 맨날 그렇게만 살 수가 있겠는가. 아무래도 지금처럼 밖에 나와 활동하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다시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듯하였다. 같은 직장에서 일했고 지금은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동료들 모두가 활기차게 사는 모습도 서로에게 큰 위안이고 힘이 된다. 세상은 각자 자기식대로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항상 말동무가 없어서 외로워하는 박 이사가 박 영감으로 신분이 바뀌어 관리사무소에 들르면 언제든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