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뒤부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요

by 쉐비

스카겐(Skagen)이 어디에 있을까? 구글(Google) 지도를 실행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북유럽의 발트해 근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흠, 여기 있네^^ 독일 북부에서 북해 건너 노르웨이와 스웨덴 쪽으로 뿔처럼 뻗어나간 덴마크 유틀란드 반도 끝단의 항구도시였다! 북쪽 정면으로 노르웨이의 오슬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도의 오른쪽 북해 연안을 따라가면 스웨덴의 예테보리가 강 건너 마을처럼 가깝게 보였다. 이어지는 발트해 북부 연안에 말뫼와 아바(ABBA)의 도시 스톡홀름이 차례로 나왔다. 발트해 깊숙이 더 들어가면, 수오미(Suomi)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가 있다. 10년 전 서유럽 여행을 마치고 귀로에 잠시 들렀던 곳이라 반가운 도시다. 바다 건너 남부 연안으로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라트비아의 리가도 짚어보았다. 스카겐은 유럽의 최북단에 위치한 땅끝마을이었다. 한국보다 8시간이 늦고, 인구는 8,000명에 불과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도시라고 한다. 내가 아는 주인공 폴 한센(Paul Hansen) 소장이 말년에 찾은 고향이다. 정확히는 그의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의 출생지이다. 그의 집은 커다란 붉은 지붕 건물로 발트해를 마주 보고 있다고 했다.

스카겐 광장. 폴 한센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그의 집은 붉은 지붕을 하고 발트해를 바라보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Google)




프랑스 태생인 그는 이혼한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한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다. 그는 은퇴한 노인들이 거주하는 렉셀시오르 아파트에서 무려 26년간이나 관리소장으로 일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단한 기록이다. 68세대 밖에 안 되는 소규모 단지로 우리나라의 노인복지주택과 유사한 주택이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관리소장은 어느 주택단지보다도 입주민들과 가깝고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복지주택은 노인복지법상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를 반드시 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디나 다 그렇지는 않다. 주로 사회복지법인이 주도하는 민간 임대형 노인복지주택은 소정의 임대료를 받고 운영하는 사회복지사업인 만큼 대체적으로 인력운영기준을 준수하는 편이다. 반면, 소유권을 개인에게 이전한 분양형 주택에서는 관리비 부담으로 인하여 간호사를 따로 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분양형이나 임대형이나 똑같이 병원 등 의료시설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점은 입주자 등에게 심리적으로 상당한 안정감을 제공해준다. 관리소장 폴은 고령화가 진행된 입주민들의 생명을 살피는 일 등에 관심을 쏟으며 내 집 일처럼 성실하게 일하였다. 프랑스의 국민작가 장 폴 뒤부아(Jean Paul Dubois) 작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중 폴 한센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장면은 실제 우리 단지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구체적으로 그려져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아침에는 일단 모든 복도를 돌면서 전반적인 청소상태를 점검하였다. 그다음에는 엘리베이터, 조명, 전기시설을 점검했다. 날씨와 기온에 상관없이 늘 옥상에 올라가 환기시설을 점검했다. 여덟 개의 기둥에 각기 세 개의 모터가 돌면서 통풍, 탈취, 제습기능을 했다. 나는 밸브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했고 각 군(群)의 모터들이 돌면서 노후화의 조짐인 신음을 뱉지는 않는지 주의 깊게 주의를 기울였다. 건물 안으로 돌아와서는 지하에 내려가 급수펌프 설비를 점검하고, 차고 문 셔터에 윤활유를 바르고, 화재경보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살피고, 출입증을 갖다 대야만 열리는 보안장치들을 전부 점검했다. 다시 올라가 본격적으로 유지보수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건물 안팎 주요 구역에 설치된 스물네 대의 감시카메라 영상들이 집결되는 관리실에도 잠시 들렀다."



경험이 일천한 나는 매일 주택단지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폴 한센이 일하는 방식을 떠올려보곤 하였다. 그가 매일 일과를 시작하는 모습은 분명 나보다 훨씬 꼼꼼하고 철저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를 본받아 현실 세계에 적용하고자 나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였다. 소설 속에 나오는 그 대목은 나에게 한동안 신선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마당을 둘러보고, 각 동 출입구로 가서는 게시판의 각종 공고물의 상태를 점검한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내부도 들여다 보고 청소상태를 확인하는 등... 엊그제는 탑층에 사는 입주자가 제기한 민원을 처리하고자 기전과장과 같이 옥상에 올라가서 직접 방수작업을 하였다. 얼마 전에 마친 외벽 균열(crack) 보수공사처럼 전문업체를 불러야 할 정도가 아닌 간단한 작업이었다. 소형 플라스틱 총 모양으로 생긴 실리콘 건에 실리콘 병을 하나 장착하고 지붕의 금이 간 부분에 천천히 정성스럽게 발라주었다. 그리고 장난감 삽처럼 생긴 나무 도구를 붙질 하듯 한 손에 쥐고 마감처리를 하였다. 두텁고 보기 좋게 마무리한 모양이 금 과장이 한 것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민원인이 현장에 와서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말한 것보다 훨씬 충분하게, 아주 꼼꼼하게 했네!" 하고 말하며 흡족해할 것 같았다.^^

오늘은 고장 난 비상발전기를 수리하는 현장에서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꼬박 한 나절을 보냈다. 혹시라도 정전이 되면, 자동으로 돌아가 승강기, 가로등, 기계실 등 공용부 시설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인지라 긴급 보수 사안이었다. 발견 당시 즉각 입주자대표회의에 약식 상황보고를 하는 등 미리 절차를 밟아두었다. 기백만원 정도로 제법 돈이 들었지만, 시운전까지 해본 결과 발전기는 다시 정상 작동되도록 본래의 준비태세 기능을 회복하였다. 작업을 지켜보고 나오는 길에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왠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게 보여 얼른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는 나에게 다가와 "여기 소장님이세요?"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고층 복도 청소가 엉망이라며 다짜고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사람의 앞 일은 모르는 것이라며 자기도 어디 가서 청소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묻지도 않은 말을 하기에 기분이 약간 이상했지만, 즉각 변명 아닌 실정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청소한 티가 안 나죠~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건물이 워낙 오래된 데다가 인력도 단 세 사람이 하다 보니..." 아주머니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곧바로 미화원 휴게실로 가서 반장 아주머니에게 청소를 더 철저히 해달라고 당부를 하였다. 미화반장은 내 말을 듣더니, 그 아주머니도 어디서 청소하는 사람 같다며 웃었다^^



폴 한센이 근속 26년 차가 되던 해, 입주자 대표가 바뀌었다. 까칠한 새 대표는 무슨 이유인지 대표가 되기 전부터 관리소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취임 후, 그는 관리규약과 규정을 개정하는 등 특히 단지의 시설물 사용 규칙을 강화하였다. 새로운 대표와의 신경전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폴 한센은 어느 여름날 밤, 입주민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된 수영장에 들어가 잠깐 수영을 즐기고 나왔다. 날씨가 무더운 탓도 있었지만, 다소 의도적인 행위이기도 하였다. 관리소장은 관리자로서 시설을 점검할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택하여 들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회장의 얼굴은 싸늘하였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노리던 덫에 용케 소장이 걸려들었다는 듯 묘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관리소장이 커뮤니티 시설 운영규칙을 위반했다며 즉각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였다. 다분히 회장의 개인감정이 개입된 결정이었고, 폴은 결국 세속 재판으로 단죄를 받고 관리소장직에서 해고되었다. 26년간 몸과 마음을 다해 일해왔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인내는 길지만, 몰락은 한순간이었다. 산을 오르기는 힘들어도 굴러 떨어지는 건 잠깐인 것이다.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드는 가운데에도 그는 회장이 갑질을 하며 전횡을 휘두른 일들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기어코 대표회장을 만나 두들겨 패고 말았다. 한 발 더 나간 그런 일로 인하여 폴은 급기야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고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건만, 감정의 응어리가 생기고 그것이 증오심으로 번지면서 사태는 당초 전혀 의도하지 않게 엄중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명의 이기적이고 어설프고 무능한 사람이 권력자가 되면서 공동체는 한방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꼬였던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몬트리올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에 폴은 착잡한 심정으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았다. 관리소장으로 일하는 동안 그는 어떤 면에서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자와 다름없다고 생각하였다. 관리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책임자답게 자발적이고 소신 있게 일을 처리해왔다. 그가 행동하고 관여하는 관리업무의 범위는 당연히 공용 부분이었다. 수영장도 거기에 포함되는 시설이다. 각 세대의 책임구역인 전유 부분과 한계를 분명히 하는 일은 중요했다. 관리소장이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나온 일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입주민들의 행동과 주장과 반응은 다양하고, 예측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도 많았다. "렉셀시오르는 영락없는 세상의 축소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견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공간에 어우러져 살고 있을 뿐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각종 민원으로 아무리 힘들게 할지라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는 의연하게 살았다. 오늘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랐고, 언젠가는 반짝이기를 바랐다. 설령 지금이 바닥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이제 그 바닥을 딛고 일어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누가 바르다고 지적하고 가르칠 필요도 없다. 서로의 색깔을 존중해주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어울리면 그만이다. 아무도 정답은 없다. 이 풍진 세상에서 이 인생은 행복, 저 인생은 불행이라고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시대의 잣대로 바라본 성공과 실패는 인간으로서의 존엄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모두가 내 생각 같지도 않다. 세상은 그런 곳, 어느 한쪽 구석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더라도 내 자신이 되기 위한 선택을 포기하지 말자.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Muss es sein? Es muss sein!). 고향 스카겐으로 돌아간 폴 한센의 남은 앞날이 평탄하고, 항상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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