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리 우 주임이 점심을 샀다. 우리 사무실의 같이 일하는 사람은 경리주임, 기전 주임, 기전과장, 그리고 소장, 이렇게 네 식구가 전부다. 그나마 기전과장과 기전 주임은 격일제 24시간 맞교대로 근무를 한다. 사실상 매일 상근 하는 인원은 딱 세 명으로 단출하다. 청소와 경비는 모두 외부 용역을 주고 있어서 어르신 네 분과 아주머니 세 분은 열외다. 평소 우리는 점심을 각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먹는데, 지난주 우 주임이 웬일인지 갑자기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잡은 약속이었다. 금 과장과 같이 근무하던 날이었다. 기전 주임을 제외한 우리 셋은 금년 초 한 달 사이에 차례로 합류하였다. 그중 내가 가장 먼저 들어왔고, 그 두 사람은 내가 직접 뽑아 채용하였다. 꼭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 은연중 애착이 더 가는 건 아마도 이케아 효과(IKEA effect)로 밖에는 달리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자기가 직접 조립한 물건에 애착이 더 간다는 그런 이론 말이다. 우 주임이나 금 과장이 꼭 이렇게 우리 셋이 같이 근무하는 날을 택하여 가끔씩 점심을 사겠다고 하는 데는 무언 중 그런 인연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그렇다고 기전 주임만 왕따 시키듯 항상 빼놓는 건 아니다. 단합을 다지거나 격려 차원에서 일부러 네 식구가 함께 먹는 기회도 종종 갖는다. 그럴 때는 아침에 퇴근한 사람이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일부러 집에서 다시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기는 하지만.
금 과장이 우 주임에게 점심을 왜 사는 거냐고 묻자, 우 주임은 그냥 사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며 웃기만 하였다. 그 말을 듣고서는 금 과장도 다음 주에 사겠다고 나섰다. 우 주임이 금 과장님은 또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그는 왠지 사야 할 것 같다며 유머러스하게 대답을 하였다. 시간 외 근무가 제법 쌓였던 모양이다. "소장님 차로 가요^^" 우 주임이 나를 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느 때처럼 오늘도 차량 담당은 내가 했다. 그 정도의 서비스는 직원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갈 때마다 붐비던 추어탕집이 오늘따라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이 눈에 띄며 여유 있어 보였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내가 말문을 열었다. "11월이 가까워지니 괜히 마음이 바빠지네~~~"
매년 11월은 다음 해 사업계획과 예산을 확정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중 특히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은 직원들의 급여 인상이다. 알게 모르게 결국 주변 단지들과도 비교가 된다. 직원들의 사기와도 직결되는 것이어서 소장이 느끼는 책임감과 압박감은 상당하다. 더구나, 돈 쓰는 데에 인색한 동대표들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이번 급여 조정도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 경리 월급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에요. 그런데 소장님 급여가 너무 작아요" 나름 업계의 개략적 급여 수준을 파악하고 있는 우 주임이 안타깝다는 듯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런 상황은 나도 익히 잘 알고 있기는 하다. 소장의 급여 수준은 과장, 대리, 주임에게 차례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각 단지의 위상과 이미지를 판단하는 바로미터로 인식되기도 한다. 처우가열악한 현실이지만, 우연한 기회와 인연으로 만난 우리 네 사람이 여기 같이 머물고 있는 데에는 각자 다른 사정과 이유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우리 셋과 달리 그 이전부터 근무하고 있던 기전팀 조 주임은 올해 7년째 근속 중인 최고참이다. 사무실 최연장자로서 이제 60대 중반을넘어 바야흐로 70을 바라보는 촉탁직 사원이다. 나는촉탁사원의 정년이 따로 있고, 그것이 70세라는 것을 여기 와서 취업규칙을 보고 처음 알았다. 금년 초, 내가 부임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기전과장과 경리 주임이 1주일 상관으로 사직을 하였다. 소장을 포함하여 그와 같이 근무했던 세 사람이 다 떠난 것이다. 사정이 그렇게 된 마당에 주변에서는 조 주임도 혹시 나가지 않을까,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의 처신을 지켜보는 눈초리가 적지 않았다. 혼자 노병처럼 남아있는 그의 심사가 결코 편하지는않았을 것이다. 몇몇 주민들은 조 주임의 근무태도를 못마땅해하며 나에게 빨리 그를 내보내라고 압박하는 일도 있었다. 근로계약 만료가 도래할 즈음에 그를 따로 불렀다. 동대표와 주민들의 듣기 거북한 평가를 전하고,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며 따끔한 경고를 하였다. 그런 뜻에서 계약기간을 짧게 끊어서 갱신 계약서를 썼다. 그런 일이 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그의 태도를 보면, 속으로는 이미 이런 상황까지도 즐기는 능구렁이가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가 지금까지 나에게 들려준 의미 있는 말은 나이 70 넘어서까지 이런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 한 마디였다. 당장에 그만둘 생각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근로기준법이나 취업규칙을 잘 알고 하는 말인지 가름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단지로 옮겨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다만, 나이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차마 결행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니 모진 수난을 당하더라도 여기서 최대한 버텨보리라작정한 것 같았다. 남들처럼 독하지 못한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였다.
내가 이 단지로 오게 된 것은 비록 월급은 작더라도 마음 편한 단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장 컸다. 그래서 500세대 이상이었던 단지에서 500세대 미만인 소규모 단지로 전배(轉配)해줄 것을 본사 매니저에게 요청하였다. 막상 부임하고 첫 급여명세서를 받았을 때 실수령액을 보고서는 액수가 좀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었기에 불만 없이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거칠고 드세고 사나운 갖가지 민원으로 힘들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국민연금과 약간의 개인연금을 받고 있어서 당분간은 어느 정도 양보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 와서 겪어보니 확실히 분위기 차이가 느껴졌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가 주민들의 성향이 특히 달랐다. 보다 온건하고 인간적이며 매너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종놈 취급하며 고압적이고 비아냥거리기 일쑤던 그 마을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 대조적이었다. '마을도, 사람들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하며 놀랐다. 인근 단지에 근무하는 동료 최 소장이 "그것 봐!" 하며, 미리 예방주사 맞았다고 생각하라던 말이 몇 번이고 떠올랐다. 단지 규모가 작고, 직원도 기능별 최소 인력만 있어서 소장인 나는 종전보다 훨씬 더 바삐 그리고 더 많이 뛰어야 했다. 직접 PC를 치고 회의자료 등 문서작업을 하는 것은 어디서나 당연하다. 나는 그동안 특히 현장 구석구석 다니며 기술적인 문제들을 다부지게 처리하는 일에 취약했다. 왕년의 습관에 젖어서 그런 일은 소위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만사 척척 잘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 안일한 마음은 진즉 버렸어야 했다. 이 단지로 와서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고 지난날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해보았다.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챙기며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처리하는 등 실무경험을 쌓는 일이 중요하고 급선무였다. 독자적 대처 능력을 길러야 했다. 과거 중국의 지도자 후진타오의 글을 읽고 기억에 남은 한마디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기층(其層)으로 가라'. 나에게는 그런 자세와 각오가 필요하다. 여기서 1년쯤 지나면, 나는 확실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보기에도 행복해 보이는 경리 우 주임이 - 실제 그러기를 바란다^^ - 여기 우리 사무실에 합류한 것은 극적이었다. 본사 회계 매니저가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 것을 눈치채고 이메일 주소를 바꿔 내가 직접 뽑았다. 50대 초반 나이지만 훨씬 젊어 보이는 그녀는 슬하에 아이 둘을 둔 맹렬 중년 여성이다. 직전 근무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지막 순간에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났다고 들었다. 상처가트라우마급으로 커 보였다. 월급이 작아도 상관없다며 흔쾌히 받아들이고 우리 사무실에 합류한데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똑똑 끊어지는걸 좋아하고 복잡한 걸 질색하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건 소장님이 전문이니 맡아달라며 맺고 끊는 것도 선수였다.(^^). 출퇴근 시간도 칼이다. 점심시간 10분 전, 퇴근 시간 10분 전이면 미리 맞춰놓은 전화기에서 시그널 음악이 울려 퍼진다. 특히 퇴근 시간이 되면,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내 자리 앞에 있는 철제 캐비닛 문을 후다닥! 하며 잠근다. 그 소리에 내가 놀랄 지경이다. 모르면 솔직히 모른다고 하고, 가르쳐주면 열심히 배우려고 애쓰는 적극성도 있다. 모르는 것을 알고 습득하고자 노력하는 태도는바람직하였다. 전화를 받거나 방문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는 내가 안심하고도 남을 정도로 탁월하였다. 아주 센스 있게 대처하는 모습은 혹시나 하고 염려하던 나의 마음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우 주임이 나보다 훨씬 프로답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은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한참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저만치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던 우 주임은 내가 전화를 받을까 봐 나를 바라보며 "소장님, 그 전화받지 마세요!" 하고 말했다. 나는 과거 직장 다니던 시절 점심시간에도 고객응대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 습관이 아직도 몸에 배어있어서 순간 갈등을 겪다가 나는 내 생각을 좇아 그냥 전화를 받았다. 우 주임은 그날 바로 통신회사에 전화를 하여 점심시간 자동 안내 멘트가 나가도록 바꿔버렸다.ㅋ. 우 주임이 금 과장이나 조 주임에게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그 또한 재미있다. 우 주임이 그들 누구에게나 그랬어? 저랬어? 하고 반말투로 주고받는 모양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거슬렀다. 그렇지만, 그런 화법이 오히려 격의 없고 애교 넘치는 소통방식이어서 재미있었다. 60대 노장들의 한가운데 있는 우 주임은 어느새 우리 사무실의 귀여운 여인이 되어 있었다.
기전직 금 과장은 과거 여기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불과 3년 전, 큰아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목돈마련을 위해 불가피 퇴직한사연이 있었다. 전임 기전과장이 퇴사하자마자 기회가 잘 맞아떨어져 지금 자리에 다시 올 수 있었다. 공대를 졸업한 사람답게 기계나 전기 등 시설에 밝고 게다가 그림도 잘 그렸다.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잘하였다. 문제가 생기면, 그 처리방안을 미리 생각하는 등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좋았다. 성격도 둥글둥글해서 유머를 섞어가며 사람들과 대화도 부드럽게 잘하였다. 어떤 면에서는 성격이나 성향이 나와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아 손발이 잘 맞았다. 그래서 대화도 부드럽다. 그런 사람 만나기가 쉬운 일인가. 그건 나에게 행운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면, 꼭 금 과장이 근무하는 날 하고 싶은 건 아마도 맞교대하는 기전 주임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때문이다. 보수공사의 대부분은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처리하지만, 그가 나서서 직접 하는 일도 제법 많다. 그는 머지않아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만 하면 바로 일을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같은 소리를 가끔씩 늘어놔 주변 사람들을 의아하게 하곤 한다. 소위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앞으로 2~3년 후일 것이라며 웃었다.
브런치 작가 발검무적님의 논어 해설 글을 읽고, 마음에 든 구절을 사무실 벽에 걸어놓았다.
其身正 不令而行 (기신정 불령이행)
其身不正 雖令不從(기신부정 수령부종)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
각자 다른 사정과 다른 생각으로 만난 우리 사무실 네 식구다. 여기 같이 있는 동안, 각자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며 모쪼록 매일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