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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Dec 30. 2021

내가 늘 윷놀이에서 엄마한테 지는 이유

그리고 내가 루미큐브를 이기는 이유

 엄마는 윷놀이를 잘 한다. 실제 윷으로 하든, 모바일로 하든, 말을 바꾸든, 순서를 어떻게 하든지 간에 엄마는 나를 자주 이긴다. 아니, 윷놀이는 운 게임 아니었나?


 승부욕에 바득바득 우겨가며 지고 또 지다보니 왜 엄마가 이기는지, 왜 나는 자꾸 지는 지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가능성을 열어가며 말을 두었고 나는 확률에 모험을 걸며 지름길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윷 칸에 말이 있을 때 개가 나오면 나는 새 말을 올려두었고, 엄마는 고민 없이 있는 말을 전진시켰다. 나는 다음에 ‘도’나 ‘걸’이 나와 모 칸으로 두 개의 말 중 하나를 보내 지름길을 탈 목적으로, 코너를 돌아 먼 길을 택하는 일은 잘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엄마의 새 말에 잡혀 엄마에게 윷을 던질 기회를 제공했다. 엄마는 길을 돌아갔지만 기회를 줄곧 얻었다. 돌아가지만 돌아가지 않게 된 셈이었다.


 나는 말을 업는 것도 기회가 되는 대로 했다. 일찍부터 같이 가면 빠르니까. 나는 늘 성급했고 잡히면 두 배로 잡히는 꼴이 되었다. 엄마도 때가 되면 말을 업었다. 단, 따라오는 말이 없이 안전할 때에만. 늘 돌아가는 것 같았던 엄마의 말은 하나 둘 씩 말판을 장악해 내 말을 하나씩 잡고는 유유히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나는 모두 숫자를 좋아해 루미큐브를 즐겨한다. 나의 루미큐브 승률은 엄마가 윷놀이에서 나를 이기는 승률과 비슷하다. 내가 좀 많이 이기는 편이다. 시작은 늘 비슷하고 끝날 때는 한 턴, 두 턴 정도 차이로 내가 이긴다. 엄마는 늘 지면서 ‘빨강 10만 있었으면’, ‘파랑 9만 있었으면’이라고 투덜거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어.’라고 내가 대꾸한다. 


 왜 내가 많이 이기는 지를 생각해 보니, 엄마는 어떤 특정 숫자만이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고, 나는 그 숫자가 없으면 대체할 다른 숫자를 찾는다던지, 그 숫자를 깔려있는 판에서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다른 숫자 여럿을 머릿속에 두었다가 갖게 되면 바로 그 숫자를 구한다던지 등의 방식을 썼다. 한 숫자를 기다리거나, 그 숫자를 적극적 또는 능동적으로 구해내거나의 차이였다.  

지난 여름 계곡에서 엄마와 했던 루미큐브- 다른 색의 같은 숫자 또는 같은 색의 연속되는 숫자 세 개 이상을 늘어 놓는 게임



 새해를 앞둔 이 시점에 느닷없이 윷놀이와 루미큐브가 떠오르는 건 나의 새해 다짐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는 낮은 확률을 기대하고 지름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리기 보다는 어느 방향으로 가든 나아가는 방식을 택하고 싶다. 당장 필요한 카드 하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놓치기 보다는 다른 카드들을 염두에 두고 여러 기회 중 하나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쟁취하고 싶다. 운이 난무하는 인생에서 내 의지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게. 


사진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304909&memberNo=744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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