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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May 15. 2023

3. 비 오는 삿포로 야경, 아무 감흥이 없다

 스프 카레집에서 TV타워로 가는 좁은 골목으로 더 거센 비바람이 불었다. 춥고 지쳤는데 무슨 전망대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TV타워로 향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장 다음날 하코다테로 떠날 것이라 TV타워라도 가지 않으면 삿포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되기 때문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 날에 해당하는 TV타워 입장권을 예매했는데 당일에만 갈 수 있어 가지 않으면 무효가 되기 때문이었다.      


 카운터의 젊은 여직원은 이미 하루의 무료함에 찌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에버랜드 소울리스좌처럼 딱히 영혼은 없었지만 기계적인 친절함을 갖추고 ‘노 토이레’라며 전망대로 올라가면 화장실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이미 전망대가 얼마나 작을지 예상이 되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 애매한 저녁 시간, 나 혼자만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가본 적 없는 에펠탑처럼 생긴 TV타워는 철골로 되어있어 엘리베이터에서 철골 사이사이로 바깥 풍경이 보였다. 특별히 고소공포증은 없지만 그때만큼은 약간 어질어질하며 기분이 아찔했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곳을 한 바퀴 도는 게 5분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작았고, 생각보다 시야가 좋지 않았다. 사진으로 많이 본 오도리 공원 쪽으로 가서 창밖을 보았다. 그 어떤 감흥도 없었다. 비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 야경 때문인지, 너무 작은 전망대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오래전 갔었던 싱가포르의 나이트 사파리를 떠올렸다. 늦은 밤에도 여는 동물원은 평이 좋았고,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유명하니까 굳이 버스를 갈아타면서까지 찾아갔던 곳이었다. 내가 고려하지 않았던 점은, 내가 동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밤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냥 유명하다고 취향도 고려하지 않고 찾아다니지는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일 뿐이어서인지 비로 시야가 막힌 창문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러 가지 말자.’


 다음 날 갈 하코다테의 항구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야경이 세계 3대 야경으로 뽑힐 정도로 장관이라는 블로그 글들을 많이 보았다. 분명히 멋진 야경이겠지만 밤에 추위를 이기고 나와 먼 길을 가서 복작복작한 사람들 사이에 서서 그 풍경을 온전히 즐길 것 같지는 않았다. TV타워를 간 덕분에 하코다테 야경을 보러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홀가분하고 쉬워서 마음이 편했다.      


 너무 올라가자마자 내려가는 게 그래서 의자에 한 몇 십 분 앉아있다가 적당한 때에 내려가려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내가 막 전망대로 올라온 커플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니 여자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남자는 내가 탈 때까지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었다. 이상하게도 장소는 많은 경우에 장소 자체보다 그곳에서 만나거나 지나치는 사람들로 기억되는 것 같다. 라운지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따로 타야 해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는데 구석에서 30대에서 40대쯤 되어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 둘과 정장을 입은 여자 한 명이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업 파트너인지 상사인지 모를 사람에게 헤어지는 인사를 정중히 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갑자기 진지해지는 분위기에 어색해하며 그쪽을 힐끔힐끔 보았다. 그 사람들도 엘리베이터를 탈지 말지 몰랐는데 막상 엘리베이터가 오자 그쪽으로 다가왔다. 엘리베이터는 아주 많이 좁았는데 나는 늘 애매할 때는 양보하는 편이라 그들이 먼저 타게 기다렸더니 정장 입은 여자가 내게 정중한 인사를 했다. 몇 층 더 내려가 문이 열리니 정장 입은 여자가 먼저 내리더니 문을 잡고는 내게 먼저 내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옷차림이나 매너나 모든 면에서 대단히 프로처럼 보이는 커리어 우먼 같았다. 시간이 지나 TV타워를 떠올리면 엘리베이터를 내려갈 때 잠시 마주쳤던 그 커플과 정장 입은 여자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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