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서 하룻밤만 자고 하코다테로 향했던 이유는 하코다테가 삿포로보다 남쪽에 있어서 벚꽃 개화 시기가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개화 시기가 빠르다는 건 지는 시기도 빠르다는 의미이고, 이미 한국, 일본 모두 벚꽃 개화가 예정보다 빨라졌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하코다테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별 모양의 공원 외곽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연못이 둘러싸여 있고 그 안으로는 벚나무가 가득해서 만개했을 때 그 옆의 전망대에서 공원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들을 보고 홀린 듯 결정했다. 삿포로 왕복 항공권이 28만원인데 하코다테까지 가는 기차 패스가 18만원이라서 이게 과연 가성비가 있는 결정인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들곤 했다.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하코다테로 가는 열차는 만석이었다. 3시간 44분을 달려 도착한 하코다테역에서 약 20분 정도 전차를 타고 가면 고료카쿠 공원 앞 정거장에서 내린다. 4시간의 지친 여정 끝에 고료카쿠 공원 도보 5분 거리의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방 창문으로 고료카쿠 타워가 보였다. 전날과는 다르게 다행히 해가 뜨며 날씨가 아주 맑아서 얼른 고료카쿠 공원에 가보고 싶었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호텔에서 대략 1시간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오후 4시 반 쯤 되어 호텔을 나오니 날이 더 맑아진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었고, 나와 같이 열차와 전차에서 쏟아지듯 내렸던 관광객들은 다들 호텔로 또는 다른 지역으로 갔는지 주변이 한산해졌다. 고료카쿠 타워 바로 아래 벚나무가 만개하며 예쁘게 피어있었다.
‘늦지 않았구나.’
애매한 시간인데 타워를 올라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전날 TV타워 전망대를 갔다 왔었고, 4시간이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느라 걷지 못한 것도 있어서 우선 공원을 걷고 다음 날 타워를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와...”
과연 탄성이 나오는 풍경이었다. 어떤 풍경들은 사진이 절대로 담지 못하는데 그날의 고료카쿠 공원이 그랬다. 만개는 아니지만 거의 만개에 가까울 정도로 벚꽃이 공원 사방으로 장관이었다. 해 질 무렵의 시원한 바람, 흩날리는 벚꽃잎, 산책하는 사람들, 운동복을 입고 시간을 재며 공원 주변을 뛰는 중학생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그 분위기는 보고 느끼고 기억할 뿐 어떤 매체나 글로도 담을 수 없다. 그저 모든 피곤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공원은 별 바깥쪽의 산책로를 따라 걸을 수 있고 별 안쪽의 산책로는 지대가 살짝 높아 공원 바깥쪽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별의 완전 안쪽에는 옛집이 있었던 터 여럿이 있고 아주 오래된 일본 건물 하나가 있었는데 애써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한산해지기는 했으나 그냥 보고는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어서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만개한 벚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었다.
다음날도 하코다테에 있을 것이라 또 고료카쿠 공원에 올 수 있음에도 그날은 풍경, 날씨, 분위기 그 모든 게 완벽해서 해가 질 무렵까지 공원 주변을 걷고 또 걸었다. 두 번째 벚꽃을 보러 홋카이도에 갔지만 그게 두 번째 벚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날의, 그곳의 벚꽃은 전에도 본 적 없는, 다음날 다시 가더라도 같은 느낌이 아닐 정도로 유일했다.
그날 저녁으로는 하코다테에서 유명하다는 시오(소금)라멘을 먹었다. 스프카레와 마찬가지로 하코다테에서 시오라멘이 유명한 줄 전혀 몰랐으며, 고료카쿠타워 바로 옆에 시오라멘이 유명한 라면 체인점의 본점이 있는 줄은 더더욱 몰랐다. 내가 있는 곳 근처에서 유명한 음식을 파는데 굳이 가지 않을 이유는 없기 때문에 라멘집이 문 닫기 1시간 전 7시 30분에 갔다. 바쁜 시간에 왔으면 앉을 자리도 없었을 텐데 끝나가는 시간에 와서 고료카쿠 타워 바로 앞, 바깥을 바라보는 1인석을 안내받았다. 벚나무가 보이는 밤 풍경을 보며 먹는 라멘은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소금라멘이라고 해서 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고, 맑지만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이 인상적이었다. 맛있는 음식은 남기지 않는 게 예의라는 생각에 국물까지 싹 비우고 일어나 친절했던 직원들과 서로 정중히 인사를 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