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유명한 하치만자카 근처의 전차 정거장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가니 오른쪽으로 경사가 급한 언덕길이 쫙 펼쳐져 있고 그 위로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여럿이 길 중간, 길 멀리 여기저기에 있었다. 길은 차가 실제로 다니는 차도였음에도 몇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찻길 가운데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차가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언덕의 제일 위로 올라가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멋진 광경인데, 또 감흥이 없었다. 수시로 찻길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시야에 걸려 집중하기 어려웠다. 관광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생각하고 주변을 조금 걷다가 또 유명 관광지인 아카렌가 창고로 향했다.
빨간색 창고 여럿이 부두 가까이에 있고 창고는 작은 상점, 식당 등으로 개조해 사용되었다. 고료카쿠 타워에서도 중학생들이 많았는데 수학여행을 오면 들르는 코스인지 아카렌가 근처에도 단체 여행을 온 것 같은 중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특히 하코다테의 유명 버거 체인인 ‘럭키 삐에로’앞에 많았다. 배가 고플 점심시간이었다.
여행 오기 전 맛집 검색은 안 했어도 ‘하코다테 가볼 만한 곳’이라는 검색어로 검색은 많이 했는데 그 때 마다 빠짐없이 나온 ‘럭키 삐에로’는 버거 안에 닭튀김이 들어가 있고, 감자 튀김은 컵에 담아 나오며 그 위로 케첩 대신 하얀색의 소스가 뿌려져 있고 콜라 대신 우롱차가 나오는 차이니즈 치킨버거 세트가 유명하다고 했다. 메뉴와 메뉴의 이름 모두 일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1일 차부터 스프 카레와 조식에 포함되어 있던 닭튀김을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있었던 이유와 굳이 일본에서 버거를 먹을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에 럭키 삐에로는 가지 않기로 했다. 가지 않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가는 관광지마다 항상 있어서 조금씩 호기심을 돋우긴 했다.
점심은 하코다테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현지 소바 집에서 새우튀김 온소바를 먹었다. 나는 주로 있는 위치에서 가까우면서 별점이 나쁘지 않은 곳으로 찾아가는 편이었고, 그 방식으로 가다 보면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 기다려야 하거나 하지 않고 적당히 손님들이 있어 조용히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온소바에 들어간 새우튀김 두 개는 갓 튀겨냈는지 몹시 뜨겁고 맛있었다.
하코다테역에서 다음날 갈 기차 일정을 바꿔 표를 받은 뒤 전차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조금 쉬었다. 호텔이 내가 좋아하는 장소와 가까이에 있으니 쉬었다가 가고, 또 쉬었다가 가고 싶을 때 가고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해 질 무렵에 고료카쿠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전날보다 훨씬 많은 벚꽃잎이 공원 둘레를 감싸고 있는 개울로 떨어져 어떤 곳은 물의 표면이 완전히 분홍 벚꽃잎으로 뒤덮여있었다. 3일간 대략 내가 한 달 동안 걸을 거리를 몰아 걷다 보니 피곤해지기도 하고 슬슬 배가 고팠다. 끼니마다 식당을 찾아가는 것도 일이었다.
‘럭키 삐에로에서 테이크 아웃 해서 호텔에서 먹을까?’
일본에서 버거를 먹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은 배고픔과 귀찮음에 아주 나약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럭키 삐에로는 내가 전날 먹었던 라멘집 바로 건너에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있어서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패스트푸드여서 인지 입구에서 한 5분 정도만 기다리니 바로 주문할 수 있었다. 세금 포함 대략 우리 돈으로 9500원 정도 하는 차이니즈 치킨버거 세트를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먹지 않기로 한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맛이었다. 왜 이리 맛있는지.
기묘하다고 생각했던 치킨버거+흰 소스 감자튀김+우롱차의 조합은 이상하게도 어울렸다. 왜 어울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잘 팔리겠지.
그렇게 버거 세트를 완전 클리어한 뒤 이미 어두워진 창밖으로 빛나는 고료카쿠 타워를 한참 동안 보았다. 꿈 같은 봄날, 행복한 하코다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