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하코다테행 기차>
삿포로를 출발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나 하코다테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에 창밖 멀리서 몹시 특이하게 생긴 산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산 없이 홀로 우뚝 서 있는데 정상에 두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화산이었다. 화산 폭발로 마그마가 있던 자리가 함몰되어 생긴 칼데라 지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도를 확대해 산의 이름을 알아냈다. ‘고마가다케산’
몇 차례의 검색 끝에 내가 생각한 대로 고마가다케산이 활화산이며, 칼데라 지형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몇 분 후에 아주 멋진 호수가 펼쳐지며 화산이 그 뒤로 보였다. 열차는 호수 근처의 오누마코엔(공원)이라는 역에 정차했다. 당장 내리고 싶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처럼 충동적으로 내리지는 못했고 내가 돌아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지 빠르게 머릿속 계산기를 굴렸다. 될 것도 같았다.
<하루 전 하코다테역>
“지정석 표를 예매하고 싶거든요. 인터넷으로 예매하려고 했는데, 뭐가 잘 안 되네요.”
여직원은 내게 JR패스 관련 창구로 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그 창구는 비어있었다. 아무래도 찾는 사람이 있을 때만 직원이 있는 것 같았다. 한 1분 정도 기다리니 뒤쪽 문에서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단발머리에 안경 쓴 여직원이 창구에 앉았다.
“이 티켓을 반납하고, 인터넷으로 예매한 표를 받아 가고 새 표도 예매하고 싶거든요.”
직원은 몹시 혼란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차분함을 유지했다. 내가 반납한 표는 4월 29일에 하코다테역에서 출발해 노보리베쓰로 가는 열차 승차권이었다. 그리고 내가 인터넷으로 예매한 표는 오누마코엔에서 출발해 노보리베쓰로 가는 열차였다. 참고로 내가 갖고 있던 홋카이도 JR패스는 인터넷으로 지정석 티켓을 예약할 수 있으나 타기 하루 전 오후 9시 이전까지 실물 티켓으로 교환하지 않으면 취소가 된다.
나는 눈이 반짝이며 총명한 사람들을 만나는 걸 몹시 좋아한다. 직원은 내가 반납한 티켓과 내가 휴대폰으로 보여준 예매한 표를 보고 아주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바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오누마코엔?”
왜 하코다테 출발이 아닌 뜬금없이 오누마코엔이 나오냐는 의미였다. 나는 영어와 번역기 사용을 섞어가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내일 오누마코엔을 가고 싶은데, 제가 이미 갖고 있는 티켓과 같은 경로여서인지 예매가 안 됐어요. 그 티켓을 지금 예약해서 받고 싶어요. 그리고 오누마코엔에서 노보리베쓰로 가는 열차는 제가 인터넷으로 예약했으니 그건 바로 표로 받고 싶고요.”
“4월 30일?”
그녀는 내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오누마코엔발 노보리베쓰행 열차가 4월 30일이 맞냐고 확인했다. 반납한 티켓과 예약 날짜가 다른 점을 눈여겨본 것이다.
“오... 아뇨 아뇨. 이거 제가 날짜 잘못 예약했네요. 취소하겠습니다.”
그녀는 이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왜 그 티켓은 예매할 수 있었는지 이해했다.
“오누마코엔, 노보리베쓰, 4월 29일 같은 날짜?”
직원은 짧은 단어들은 영어로 이야기했다.
“네”
나는 미리 봐 두었던 기차 시간을 정확히 말했다.
“하코다테 발 오누마코엔 도착 열차는 오전 10시 5분 걸로 부탁합니다. 그리고 오누마코엔 발 노보리베쓰 도착 열차는 오후 12시 44분 출발로 부탁합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서 발권을 하려고 했다.
“아, 그리고요. 죄송한데 오누마코엔까지는 A좌석을, 노보리베쓰까지는 D좌석을 부탁합니다.”
직원은 왜 그런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실제로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내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져서인지 메모지에 행선지, 시간, 좌석을 적고는 차분히 발권을 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내가 부탁한 모든 요구사항이 들어있는 표 두 장을 건넸다.
“실수로 예약하신 표는 제가 취소해도 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가 인터넷으로 날짜를 잘못 예약한 4월 30일 자 표를 취소해도 되느냐고 번역기를 사용해 물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오누마코엔까지 30분간 타는 열차의 A석을 원했던 이유는 오전에 남동쪽에 뜨는 해를 피해 서쪽으로 앉기 위해서였고, 노보리베쓰까지의 D석을 원했던 이유는 오누마코엔을 지나 나타나는 바다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노보리베쓰행 열차 탑승 시각은 오후 12시 30분이 넘기 때문에 해가 남서방향으로 가서 동쪽의 D좌석은 해도 피하고 바다도 보는 1석 2조 자리였다. 표를 받고 나와 2층의 카페에 앉아 하코다테역 광장을 바라보았다. 커피 옆에 새로 발급받은 표 두 장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며, 총명해 보였던 그 직원이 부디 내가 왜 A석과 D석을 원했는지 알아채기를 바랐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