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오른쪽 창의 블라인드는 모두 거의 반 정도 내려와 있었다. 나는 올 때와는 반대 방향에 앉아 새로이 보이는 광경을 별생각 없이 관찰했다. 하코다테에서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나서 오누마코엔역에 도착했다. 나를 비롯해서 10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역에서 내렸다. 역은 역무원 한 둘이 있는 작은 간이역이었고, 공원에는 주로 현지인들이 차를 타고 오는 것 같았다.
전날 검색해 둔 대로 인포메이션 센터에 300엔을 내고 캐리어를 맡겼다. 역보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듯했다.
오누마호는 사실 2시간 만에 둘레를 걷기는 턱없이 부족하고, 인포센터에서 가져온 지도에 따르면 한 바퀴를 도는 게 14km나 되어서 자전거로 70분, 차로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내가 간 곳은 공원 광장에서 출발하여 호수 위로 있는 작은 섬들을 연결한 20~50분 정도가 걸리는 산책로 몇 개였다. 잠시 들르는 것이라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역에서 광장 쪽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경찰이 차도 별로 없는데 교통정리를 했다. 광장 입구부터 반바지 차림의 운동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달리기 대회가 있었는지 학교별로 모여서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서로 축하하기도 했다. 2일 전 고료카쿠 공원에서 런닝하던 중학생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그 나이에 땀 흘리며 또래 친구들과 서로 응원하고 매진하는 취미가 있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부럽기도 했다. 모든 걸 잊고 몰입하는 모습이, 순수하게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이, 성취에 만족하는 모습이.
오누마코엔 쪽에서 본 고마가다케산은 하코다테로 가는 열차에서 본 모양과 다르게 정상이 움푹 파인 정도가 덜했다. 산을 배경으로 하여 호수 위의 산책로를 걷고 또 걸었다. 나 같은 외국인 관광객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 주말에 쉬러 나온 일본인들이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산책로 중 어느 구간은 사람이 전혀 없어 조금은 으스스하기도 했다.
짧은 두 시간의 공원 방문을 마치고 온천으로 유명한 노보리베쓰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내릴 때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는데 갈 때는 플랫폼에 나까지 5명밖에 되지 않았다. 열차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되게 많았는데, 냄새가 강렬해서 나는 사실 하코다테로 갈 때 사놓고도 차마 먹지를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간단히 하코다테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미리 사서 커피를 마시며 함께 먹었는데 딱 적당했다.
삿포로에서 하코다테까지 가는 열차는 3시간 44분이나 걸려서 인천에서 삿포로까지의 비행시간보다 긴데도 전혀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물며 돌아가는 기차는 경로를 끊어서 타니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특히 삿포로-하코다테 열차 코스는 거의 2시간 정도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더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일본에서 열차 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고 이번에 하게 되어 만족할 줄 알았는데(물론 무척 만족한다), 오히려 ‘다음에 다른 곳에 또 열차로 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버렸다. 그만큼 기차여행은 묘한 매력이 있다. 지나가는 작은 역 하나 하나 찾아보는 호기심이, 풍경을 바라보며 근심을 잊는 신통함이 생겨나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