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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Dec 19. 2021

2020년 6월 14일


요즘 기분은 좋은 편인데 이상하게 낮에 비단이 생각으로 눈물지을 때가 많다. 물론 혼자 있을 때만 그런다.

어제는 주말이라 핸드폰을 하며 빈둥거리고 있었다. 남편이 태블릿 PC를 주문하면서 각인 서비스가 있는데 새기고 싶은 문구 같은 게 있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하면 된다'  '될 때까지 하자' 같은 각인하고 싶지 않은 문구들만 떠올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비단짱'이라고 새겨도 돼라고 말했다. 순간 머리가 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바로 눈물이 나와 버려서 너무 난감했다. 남편은 좀 전까지 실실거리며 핸드폰 보던 마누라가 갑자기 훌쩍거리니까 놀란 것 같았다. 남편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그런 건 없어. 죽으면 끝이야'라고 대답했다. 지난달에 정리해서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비단이 사진들을 보면서 비단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는 어떤 동물도 키워서는 안 될 것 같고, 비단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서 괴로워졌다. 그런 생각들이 또다시 스쳐가는 중에 남편에게 내가 비단이를 잘 키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잘했던 못했던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없어. 비단이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야’라고 말했다.


눈물이 그치지 않아 한참을 울었고 자기 전까지도 훌쩍거렸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약간 우울한 상태로 일어났다.

내 생각에 나는 아직도 비단이와 함께 지내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집안에서 내내 혼자 있는 시간이 당연하면서도 어색하다. 비단이가 마지막까지 썼던 담요는 아직도 세탁하지 않아서 쿰쿰한 냄새가 난다. 동물들 학대하는 사건이 기사에 자주 보인다. 코로나19로 지인들도 만나기 힘들고 사람 많은 곳으로 외출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비단이가 떠나고 오랜 시간 혼자 지냈다. 나는 아직도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다만 비단이가 이 세상에서 나와 남편과 관계하며 지냈던 길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졌던 어떤 느낌들, 그 에너지들은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20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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