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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5 다시 오지 않는 것

경우의 수의 무한루틴

훌쩍 55일이 지났다. 아이의 몸무게는 2/3가 더 늘었고, 모든 어른들의 말씀처럼 아이는 점점 예뻐졌다. 아이를 안아 올릴 때면 부서질 새라 조심스럽던 내 손놀림도 어느덧 조금은 굳어진 아이의 몸 덕분에 다소간 여유롭다.


긴 연휴를 맞았던 30일 즈음 부터, 잠을 자고 일어나 젖을 먹고 모빌이나 촛점책으로 시간을 보내며 팔다리를 휘젓고 때때로 목욕을 하는 삶의 패턴에 아이도 적응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이따금씩은 먹을걸 토해내고 이유 없이 울기도 했지만 아이도 어른들도 그 와중의 불안감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50일을 즈음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울음이나 투정의 원인에 대한 경우의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졸리거나,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하는 3가지 경우에서 아주 조금 늘어난 경우의 수는, 안아달아거나, 공갈젖꼭지만 물고 싶다거나, 애미애비 무릎아래 누워 모빌을 보고싶다는 경우들로 분화했다. 물론 이마저도 전부는 아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어떤 의도가 있고 아내와 나는 그것들을 알아내려 노력 중이다.


아내의 일관적인 원칙 덕분에 6주차 즈음 부터 아이가 꽤 안정적으로 밤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른바 ‘통잠’이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의 2주간 밤에 잠이 들면 거의 10시간 가까이 동안 한번 밖에 깨지 않고, 그마저도 기저귀만 갈아주면 금방 잠이 든다. 그 결과 출근이라는 핑계를 지닌 나만 편안한 밤시간을 보내게 됐다.


여기서 오는 미안함에, 주말이나 휴일 같이 출근 핑계가 없을 때에는 내가 밤에 아이를 보려고 노력했다. 그냥 그렇게 했으면 한거지 노력했다는 단서를 다는 건, 그마저도 아내가 모유를 물리기 위해 나에게 과분한 휴식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일 낮에는 아내가 가벼운 외출이라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려 하는 중이다.


그 가운데 아직 파악하지 못한 울음과 투정의 경우를 만나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알고 있는 경우의 수가 고작 대여섯개 정도이니 그 모두가 아이를 안정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직 공갈 젖꼭지를 물리기 전이었던 30일 즈음에는 더더욱 그랬다. 아이가 울고 투정부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젖 먹을 때가 되는데 아이가 젖병을 물지 않으면 나의 평정심은 완전히 무너진다. 또는, 방금 젖을 먹었는데도 계속 투정을 부려 대여섯개의 루틴을 모두 시도한 후 다시 젖병을 물리는 차례가 오고, 아이가 실제로 젖병을 물면서 울음을 멈추면 이러다 과식으로 토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지는 것이다. 그나마도 보통은 몇초만에 아이가 다시 울곤 했다. 그 자그마한 공갈젖꼭지가 마법의 솔루션이라는 걸 알게되기 전 까지는.


그 어떤 마법의 힘을 빌어도, 종종 아이가 몇십분 내내 찡찡거리며 우는 동안 나는 모든 경우의 수 루틴을 몇바퀴 돌려보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다보면 아이는 반드시 언젠가 울음을 멈춘다. 드디어 맞춰냈다는 성취감이 들기 보다는 그냥 아이에게 고마워진다. 내가 뭔가를 해서 아이가 울음을 멈춘게 아니라 그냥 아이가 ‘멈춰주었다’는 느낌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이런 무력함의 시간을 보내는 건 힘든 일이다. 울고있는 아이 만큼이나 나도 긴장을 하게 되고, 아이를 안고서 바라보는 자세는 목이나 팔, 어깨에 묵직한 통증을 준다. 이런 상황을 나보다 수백배는 더 겪을 아내가, 이 힘든 시간을 힘들지 않게 보내는 지혜를 알려줬다.


이 모든게,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할 것.


아내가 말했던 ‘파도’ 얘기와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의 느낌은 또 달랐다. 아이는 매일 수십그램씩 커나간다. 이미, 신생아로서 집에 막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성장해있다. 이제 곧 다가올 시간 안에 아이는 목을 가누고 혼자 의자에 앉으며 기고 또 걸을 것이다. 어느새 말로써 의사를 밝히고, 먹고 싶은 것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그날 까지,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있고 지금 이시간에도 흐르고 있다. 이렇게 아이를 온전히 품에 안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시간은 사진이나 동영상 따위로 담아낼 수 없는 성질의 고귀한 무엇이다.


이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경우의 수 루틴을 도는 험난한 시간을 맞으면 그 시간을 온전히 기억에 남기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찡그려진 아이의 표정, 칭얼대는 갸냘픈 목소리, 부쩍 거세졌을지라도 아직은 솜 인형 같은 손발의 움직임. 그러다 아이가 만족감을 느끼고 미소라도 지을 때면 햇살을 만난 눈송이마냥 녹아내리는 나의 바로 그 마음.


물론, 아이를 무릎에 눞히고서 핸드폰으로 쓸데없는 비트코인 시세나 인터넷 유머 글을 보지 않는다는 얘긴 아니다. 분명 모든 루틴이 점검된 직후임에도 아이가 울 때 야속한 마음이 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저, 그 모든 순간의 감정과 눈앞에 광경과 귓가의 소리를 담아내려는 것이다. 그런 의도만으로도, 최소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는 섬찟한 생각의 유혹을 완전히 내팽개칠 수 있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소중한 시간을, 나와 아이와 아내가 함께 보낸다.


어떤 시간도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건 비단 아이와 관련된 시간만의 특징은 아닐지언데, 아이의 존재를 통해, 그 소중함은 한없이 높은 밀도를 지닌다.


모든 시간을 소중하게 담아낼 것. 늘 생각은 하고 있었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도 계속 생각해왔지만, 마치 처음과 같이 받아낸 새로운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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