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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50

아프다는 것과 돌본다는 것

200일이 지나는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카테고리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전까지는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가 강하다면, 이제 점차 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커진다.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이 때때로 나와 맞기도, 맞지 않기도 한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나보다 많이 어릴 뿐이다.


이제 아이는 이유식이 올라간 숟가락을 제법의 완력으로 막아내기도 하고, 젖병을 두 손으로 잡아 당기거나 밀어내기도 한다. 안아달라거나 꺼내달라는 의도에 대해서는 정형화된 제스쳐를 통해 확실한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만큼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져 간다.


그것은 아마도 기억 회로가 만들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부모의 어떤 행동으로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른 예로, 아이 스스로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내가 웃는지를 확실히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웃는 것을 보고 싶을 때 그 표정을 반복적으로 나에게 보여준다. 얼마전만 해도 내가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어떤 행동을 했어야만 했는데 이제 입장이 반대가 됐다.


이렇다보니, 지금까지는 아주 어린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고 보살펴야하는지에 대한 일반론을 익혀가는 중이었다면, 요즘은 이 한명의 특정 인물을 알아가고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 같이 느껴진다. 지금 부터의 경험은 아마도 다른 아이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이 사람과 나와의 고유한 관계가 될 것이다.


아이가 신체적으로 더 크기도 했고, 제법 운동력이 생겨서 더 세심히 신경써야 하므로 육체적으로는 점차 힘들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육체적 노고의 증가분보다 훨씬 큰 행복감을 더해 준다.


그런데 하필 이 때, 아이가 아프다.




지금까지 아이는 고맙게도 아프지 않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온 직후 콧물이 조금 났던 것만 빼면 흔한 감기 한번 없었고 체온이 37도를 넘어간 적도 없었다. 그래서 신생아를 안고 응급실을 향하거나, 첫돌 전에 보험비를 몇번씩 청구하게 된다던 주변 이야기가 생경하기만 했다.


아이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아내의 생일 전날 아프기 시작했다. 체온계에 38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아침 처음 알았다. 다른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우선 해열제만 먹였고, 이부프로펜 계열 시럽으로 열이 잡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코가 막히면서 열이 다시 올라 결국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다. 덕분에 연휴와 겹친 아내의 생일은 고스란히 병과의 사투로 가득차버렸다.


한창 열이 오르고 코가 막혀있을 때, 아이는 힘없이 계속 울었다. 아이를 안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창밖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동안에도 아이의 낱실같이 가는 울음 소리가 이어졌다. 물에 푹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어르는 가운데, 갑작스레 떠올랐다. 유난히 기관지가 약했던 어린 시절, 엄마 품에 안겨서 시름시름 거리던 나 자신의 기억이.


확실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없던 어머니가 그런 나를 안고서 누군가에게 내가 빨리 낫게 해달라고 빌던 음성이 떠올랐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 음성을 따라했다. 우리 애기 빨리 낫게 해주세요. 그 청을 들어줄 대상은 없었다. 나 역시 종교가 없는데도 간절한 마음과 깊숙한 기억의 조각이 조합돼어 이끈 행동이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목이 조금 메여왔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이가 아픈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그렇게 까지 아팠던 것도 아니다. 아마도 어린 나의 기억을 통해 지금 처음으로 감기를 경험하는 아이에 몰입이 되고, 동시에 지금 아이를 안고 있는 나 자신을 통해 그 시절 나를 안고 있던 어머니에 몰입이 됐던 것 같다. 시간을 넘나드는 교감이 주는 아득함이 너무 깊은 나머지, 더 하다가는 크게 울 것 같아서 입을 멈추었다.


아이는 어느 새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이는 조금 낫는가 싶다가 다시 증상이 심해지기를 반복했다. 그 동안 아내와 나는 목과 어깨가 돌처럼 굳고 담이 왔다. 아마도 자는 내내 온몸에 긴장을 해서인 것 같다.


계속 흐르는 콧물 때문에 코가 헐었는지, 아이는 코 근처에 손만 갖다대도 격하게 몸을 피한다. 잘 먹던 것도 잘 먹지 않으려 하고, 공연하게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건강이 제일가는 효도라는 뻔한 얘기의 정확함을 새삼 깨닫는다. 늘 가장 뻔한 것이 진리에 가장 가까운 법이다.


내가 의사가 아닐 뿐더러, 행여 의사라도 병균과 직접 싸워주는건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돌보는 것 뿐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아이의 몸이 병을 이겨낼 때 까지 필요한 시간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 시간을 필요한 만큼만으로 줄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아이의 감기를 얼마나 빨리 떼어내느냐의 시간을 둔 경주가 아닐 것이다. 아이가 병과 싸워 이기는 과정에서 내가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주었는가, 아이는 그로부터 어떤 실질적인 도움과 어떤 정서적인 신뢰를 갖게 됐는가 이다.


어린 시절 골골대며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내가 필요로 했고 또 충족을 느낀 건, 마법처럼 병을 낫게 해주는 신묘함이 아니라 나를 위해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빌어주셨던 부모님의 따뜻함 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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