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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wover Nov 07. 2019

내 탓, 남 탓, 세상 탓

<안 느끼한 산문집> by. 강이슬

<SNL 코리아>, <인생 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의 TV 프로그램 방송작가가 쓴 산문집이다. 거칠고 힘들게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지만 단단한 자아가 엿보여 감히 내가 뭐라고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없다. 심심치 않게 욕이 등장하지만 그 상황에 찰떡같이 들어맞는다. 툭툭 던지는 문체에 폭풍을 뚫고 걸어온 듯한 인생인데도 여전히 힘든 인생을 모르던 어린애처럼 낙엽 굴러가는 걸 보면 까르륵 웃을 것 같은 작가의 머릿속을 엿보는 것이 가장 매력 포인트인 책이다. 



책 편식을 안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서점에 가서 집어오는 책에 8할이 에세이집이다. 그런 내게 에세이 홍수가 난 요즘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전에는 표지와 제목을 보고 착착 내 취향을 골라냈었는데, 요즘은 결이 비슷한 에세이가 많이 나와 너무 헷갈리기 때문이다. 내 취향일 것 같아 읽다가 결국 내려놓는 책들도 많아졌다. '제목에 속지 말자.'라고 다짐해놓고 다시 한번 제목에 넘어갔다.


안 느끼한 산문집

담담한 문체가 좋아. 담백한 글이 좋아. 

이 책을 안 읽는 건 늘 저렇게 말하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느낌이었달까.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역시 글은 이런 사람이 써야 하는 것 아닐까. 김영하 작가가 옛날에 선배들을 보며, 민주화운동을 하고 학교도 들어갔다 나오고 작가가 좀 이래야 글을 쓰는 건가. 나는 인생에 그다지 굴곡도 없이 평탄하게 살았는데 어쩌지... 걱정을 했었다는데, 딱 그 기분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못해볼 것 같은 온갖 경험을 다 해봤고 또 하고 있는 작가를 보며 '우와, 글감 떨어질 일은 절대 없겠구나.' 싶었다. 


나는 이 책처럼 작가가 찐하게 보이는 책이 좋다. 그래서 더 에세이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에세이 중에도 자기를 정돈해서 옮겨놓은 책이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 던져두는 책이 있다. 강이슬 작가는 후자였다. 그것도 후자의 극단. 읽으며 순간순간 내가 대신 걱정해주기도 했다. '아앗, 이거 당사자도 읽을 텐데 괜찮나?'

그렇게 한 권 안에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담겨있는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궁금해진다. 알고 지내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고, 저 사람의 인생 한구석을 같이 공유하고 싶어 진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노는데 돈 쓰는 거 아니다'라는 철학을 가진 6명의 모임 안에 내가 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안에서 낑겨서 과메기에 소라를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아 상반신 댄스를 추고 싶었다. 내 인생의 한컷 한컷을 남긴 글을 읽고 누군가 나를 궁금해하고 나와 인생 한구석을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해주는 날까지. 끄적끄적거려봐야지.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좋았다.

세상 강철 같은 멘탈의 소유자인 저자의 비결은 '남 탓', '세상 탓'이었다. 나는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정상이고 훌륭한데 세상이, 나라가 좆같아서 잘될 일도 망해버렸다고. 

나는 꽤 편안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꽤 편안했다'고해서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인생은 자주 꼬였다. 이때 나는 남 탓과 세상 탓은 애초에 어려운 조건을 헤쳐나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고 내게 남은 '탓'은 '내 탓'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써도 되는 거였다니. 자존감 도둑을 피해 도망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자존감 도둑이 나였구나 싶었다. 


앞으로 남 탓, 세상 탓하고 살아갈 걸 생각하니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듯도 싶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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