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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wover Oct 28. 2019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또 모든 것이 되고 싶어

<모든 것이 되는 법> by. 에밀리 와프닉


퇴사를 하고 혼란에 빠졌다.


상사라는 이름의 자존감 도둑이 꾸준히 갉아먹은 내 자존감은 도망처 나오고 보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한참을 침체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사람이었는데, 해보고 싶은 일이 여전히 많은데 자꾸만 숨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내 존재가 희미해져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상상을 한다. 내가 희미해져 가는 것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스르르. 


내가 이 상황을 깨버릴 기운은 없으니, 태풍이 불어 바닥에 잠겨버린 공기를 한번 휘저어 파란 하늘이 보이게 해 주었으면... 하고 멍하니 앉아 태풍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가을 태풍이 끝이 나고 겨울에 들어섰는지 나의 침울을 밖에서 깨줄 기미가 안 보였다. 


그래서 속에서부터 으쌰 으쌰 힘을 내 볼 수 있는 책을 찾아 나섰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집은 이유는 '다능인'에 대한 반짝반짝한 얘기들 때문이 아니었다. 이 책의 9장의 제목은 '두려움, 불안, 그리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침체의 원인은 진로에 대한 불암 감으로부터 비롯된 죄책감, 수치심 등이었다. 죄책감이나 수치심, 두려움이 무거운 돌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현재 나의 문제를 모두 이것 때문이었다고 우길 수는 없지만 꽤 닮아있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일들도 정작 도전할 걸 생각하면 주춤거리게 되었다. '또 아닐 것 같아.'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배부른 말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 대학교에 들어가서 갓 미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좋아하는 일이 뭘까 고민 중이에요'라는 말을 뱉을 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고 하면 다시 삼키고 '뭘 할지 고민이에요'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 원래 일이 되면 다 재미없는 거야. 다들 사직서 가슴에 품고 일하는 거지.' 이런 말들을 읽고 듣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쁜 생각, 뻔뻔한 생각인가... 싶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 아닌 건 시작을 못하겠는걸.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그래서 이판사판!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되겠지만 뭐라도 하면 '뭐라도(?)'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싸그리 모아 주물럭 거려 나 하나 먹여 살릴 길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책에는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약간의 가이드라인들이 제시되어있어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다. 

문어 레고
어떻게 일하면 좋을까?

이 책에서는 다능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능인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꽤나 다양하다. 그에 맞게 집업을 갖는 형태를 4가지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1. 그룹 허그 접근법

그룹 허그란 나의 관심사가 모인 그룹이다. 하나의 직업을 가지면서 그 안에서 몇 가지 직업 영역을 오가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면적 일이나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세부 전략으로는 아래 다섯 가지가 있다.

(1) 학제 간 분야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학제 간 분야는 서로 다른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져 있는 것을 뜻하는데 학제 간 분야에 속한 직업을 갖는 것이 이 모델의 방법이다.) 

ex) 도시 설계자 히메나 벨로스는 현장방문, 지도 제작, 시민 인터뷰, 지역공동체와의 작업, 보고서 초안 작성, 행사 구성, 정책 실행 계획, 설계, 홍보를 비롯해 프로젝트 승인을 위한 각종 작업과 완성된 프로젝트 평가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한 주간 진행한다. 

(2) 내의 관심사가 교묘히 연결된 직업을 찾아내는 것. 

ex) 사라 마이스터는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학제 간 커리큘럼을 모델로 한 독특한 교육 방법론이다.

(3) 열린 조직에서 일하기. 다양성, 창의성, 통합 능력 등을 중요시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다.
(4) 기존 업무를 보다 다원적으로 만들기.

(5) 나만의 사업 시작하기.

  

2. 슬래시 접근법

정기적으로 오갈 수 있는 두 개 이상의 파트타임 일이나 사업을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방법이다. 다능인은 보통 학제 간 분야에 끌리는 경우가 많지만 전문분야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문분야에 끌리지만 한 가지 일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경우 슬래시 접근법을 통해 그 갑갑함을 벗어날 수 있다.


3. 아인슈타인 접근법

생계를 완전히 지원하는 풀타임 일이나 사업을 하되, 부업으로 다른 열정을 추구할 만한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남기는 것을 뜻한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기존 직장을 다니면서 동시에 진행을 하게 되는데 그런 케이스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다른 방법에 비해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방법이다.


4. 피닉스 접근법

단일 분야에서 몇 달 혹은 몇 년간 일한 수, 방향을 바꿔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하나에 온전히 빠져드는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접근법이 잘 맞을 수 있다. 



그럼 나는?

전에는 나 스스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첫 번째가 '안정성'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금세 질려했으며 진득하게 한 가지 일을 파는 것을 답답해했다. 꾸준함, 성실성 등의 가치가 칭송받는 세상 맞춰 살아오며 내가 나를 속여온 시간이 길었다. 나는 그보다는 '다양성'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내가 관심 가졌던 대부분의 직업이 학제간 분야에 속해있는 것을 보고 그 생각이 뚜렷해졌다. 


나의 관심사를 늘어놓자면 심리, 교육, 진로, 책, 공간, 문화기획, 영상/사진, 콘텐츠 등이다. 학제간 분야에 속하는 것이 많고 아직 프리랜서로 일을 할 만큼 기술을 가진 분야가 없는 만큼 그룹 허그 접근법을 토대로 인생. 진로 계획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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