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식당을 떠올리며
삼 년 전, A 회사를 다닐 때 점심시간만 되면 꼭 B 식당을 갔다. 동료들 하고 갈 때도, 나 혼자 갈 때도 있었는데 대개는 마음 맞는 동료와 자주 가곤 하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 내 팔뚝 만한 고등어 구이가 칠 천 원, 불그스름한 양념을 야무지게 입은 매콤한 제육볶음은 팔 천 원. 한 끼를 집밥답게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오늘은 거기 갈까?’하며 자주 드나들곤 했는데 지금은 그 식당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음과 모음을 아무리 이래저래 짝지어봐도 내가 가진 단어엔 이미 그 식당 이름은 없다. 단지 고등어자반과 제육볶음, 오래 끓여 흐물 해진 미역국과 좌식 테이블마다의 꽉 찬 소음, 낯선 사람들의 신발들 같은 장면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한때 당연하게 향했던 것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멀어졌음을 느낄 때 그것은 또 한 번 가까이, 강하게 다가온다. 나는 그것을 사랑, 추억, 그리움, 회상 등 때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서 어느 날은 내가 고등어자반을 먹고 있기도 하고 어떤 날엔 고등어자반을 먹고 있는 나를 보기도 한다. 시간이 아무리 천천히 흐른다 해도 간판, 이름, 목소리 같은 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장에라도 그 식당에 직접 찾아갈 수도, 지도에서 검색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불확실성이 확실성을 이길 때도 있다. 사랑, 추억, 그리움, 회상을 이야기할 때 더욱 그렇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확실한 것들을 사랑하려 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불안했고 확실하지 않으면 더욱 갈구하였다. 그러나 확실한 것들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흐트러졌다. 모순적이게도 경계 없이 모두 모호해졌을 때 나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