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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Feb 08. 2023

물음표와 마침표로 뭉친 쿠키

스노우볼 쿠키

굽이진 오솔길마다 슈거파우더가 뿌려져 있다. 나는 카페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밀크티를 마셨다. 모난 곳 없이 길쭉하고 둥근 컵엔 조각 얼음이 가득 담겨 있고 그 사이사이로 밀크티가 차분히 스며든다.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올 때마다 등 뒤 커튼이 살랑살랑 속삭인다. 볕의 그림자도 밀크티에 함께 담긴다. 빨대로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는 사이 볕은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비밀 많은 스노우볼 쿠키. 소극적인 스노우볼 쿠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스노우볼 쿠키. 굴리면 굴릴수록 더욱 커지는 눈사람처럼 쿠키의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가서 여러 개의 마음으로 나뉘었다. 투명함에 단번에 녹아 사라지지 않기 위해 좀 더 작고 단단한 모습을 하고 있다. 쉽게 들키지 않는 마음이 되기 위해, 들키고 싶은 마음들을 모았다. 물음표와 마침표로 뭉쳐진 쿠키를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집어 입에 넣었다. 겉에 묻은 슈거파우더를 혀로 살짝 누르다가 어금니로 당차게 씹었다. 입안 곳곳에 비밀이 흩어진다. 버터와 설탕, 아몬드가루와 슈거파우더…, 달콤함은 금세 가루로 흩어지고 짙은 여운으로 바뀌었다. 접시엔 슈거파우더만이 남아 있다.


어느 날의 스노우볼 쿠키는 낮게 뜬 달을 연상시켰다. 아침에 어렴풋이 보이는 달이 금성이라고 믿고 있었던 시절 달의 형태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차갑고 고요한 보름달, 반쪼가리 마음으로 밤을 지키던 반달, 밤을 너무 사랑한 초승달…, 밤이 오는 건 싫었지만 달을 보는 일은 좋았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달도 떠올렸다. 밤의 한가운데에 서서 조금 걷다가 함께 보았던 달. 달은 그와 나 사이에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스갯소리도, 감동적인 이야기도. 함께 있을 때 가로등을 달로 착각하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착각하길 바랐다. 착각해도 좋았다.


스노우볼 쿠키를 괜히 매만져본다. 손가락에 하얀 가루가 자꾸만 묻는다. 아무리 만져도 묻고 만지지 않아도 자꾸만 떨어진다. 모두 입에 넣어 먹고 난 자리에도 가루가 별처럼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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