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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Feb 08. 2023

밤이 만든 케이크  

딸기 초콜릿 케이크

케이크를 밟으면 낙엽을 쓰는 듯하다. 사락사락, 퍼석거리던 소리. 오래된 편지 봉투를 열어보는 소리. 비 온 뒤 마르지 않은 땅을 밟는 소리.


빛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 그의 심장에 위치해 있을 시간에 카페에 왔다. 테이블과 의자, 벽과 쇼케이스, 커피머신과 싱크대에 볕이 두루뭉술하게 묻어있다. 영하 19도의 너무한 날씨였지만 카페 안은 빛의 왈츠로 가득했다. 목도리를 풀고 테이블에 가방을 놓고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한 커피와 디저트를 기다렸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테이블에 빛의 언어가 사르르 엎질러졌다.


볕의 파도가 케이크 위를 넘실거렸다. 한 채의 오두막 같은 케이크를 눈에 담았다. 생초콜릿을 떠먹는 듯하였다. 잠시, 요란하고도 아름다운 밤의 이름으로 산다. 소란한 밤, 우울한 밤, 뒤척이는 밤, 지새우는 밤. 또는 밤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름을 빌렸다. 나무의 밤, 벤치의 밤, 정류장의 밤, 기차의 밤, 밤하늘의 밤... 누군가의 밤이길 바라는 초콜릿 케이크. 밤이 가진 무수한 긍정과 부정을 겹겹이 쌓아 만든 케이크. 과한 단맛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불안. 불안을 허용하는 자정. 어떤 날 나의 밤은 지나치게 달거나 지나치게 불안했다. 밤과 초콜릿 케이크는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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