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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Feb 08. 2023

애틋하고 모남 없는 마음

바스크 치즈케이크

윗면이 까맣게 그을린, 군고구마 같은 치즈케이크. 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단시간 굽는 것이 특징인 이 케이크는 숯검의 모습과는 달리 속은 연약하고 무르고 부드럽다. 첫눈을 만질 때처럼 순수하고 조용하다. 뜨거움을 사랑하여 그 안에서 마음껏 뒹굴고 포옹해 윗면이 바싹 타버렸기에 누군가는 이를 잘못 구운 케이크, 실수의 케이크라고 할지 모른다. 망친 듯한 비주얼의 케이크지만 속은 다르다. 순수함으로 마음을 불태운 것처럼. 그래서 나는 사랑을 말할 때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고온의 시간을 기꺼이 인내할 수 있었던 것. 그건 아마도 어떤 단어들과 목소리, 눈동자와 냄새, 발자국이나 촉감… 그렇게 환생한 케이크.


정말 맛있는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먹은 적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닌, 서울도 아닌 전주에서였다. 새로운 작가와의 미팅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는 길은 매우 조용했다. 편의점과 세탁소, 순댓국집, 나무 인테리어가 멋졌던 카페, 낮은 빌라와 많은 나무를 보았다. 그의 공방에 도착하니 테이블엔 이미 갓 구운 크루아상과 따뜻한 블랙커피가 모락모락 김을 뿜으며 나를 반겼다. 우리는 마주 앉아 책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매우 친절했지만 나는 그가 책 작업에 용기가 부족하단 걸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내왔다. 코발트색 접시에 담긴 오묘한 치즈케이크였다. 포크로 한입 떠먹었다. 케이크가 아닌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만큼 혀에 닿자마자 자취를 감추고 금세 사라졌다.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때론 내게 남은 미각이 지난 풍경 전체를 선물처럼 지니고 올 때가 있다. 일상에서 그런 일은 몇 안 되지만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떠올릴 때면 늘 한 풍경 전체를 생각하고 만다.


겉은 똑같이 탔지만 속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것은 치즈덩어리가 그대로 씹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또 다른 어떤 것은 혀의 압축에 단번에 으스러지는, 아이스크림 같다. 나는 무르면 무를수록 더 목이 멘다. 애틋하고 모남 없는 디저트. 한없이 희생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한 시절 또는 사계가 응축된 디저트. 5월의 커피숍과 8월의 이름 모를 가게들, 11월의 오솔길과 1월에 내린 늦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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