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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Aug 12. 2017

국물 사회

아빠는 매 번 국물이 있어야만 밥을 드셨다.

“국물 없으면 밥 안 먹는다!”     

아빠는 매 번 국물이 있어야만 밥을 드셨다. 찌개를 하나 끓이려면 무, 대파 등의 육수 재료부터 된장찌개냐 김치찌개냐 미역국이냐를 결정하는 메인 재료까지 필요하다. 국물 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기에 엄마를 고생시키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그깟 국물 좀 없으면 어때!‘는 나의 단골 투덜거림이었다. 아빠의 국물 집착에는 할머니의 유언도 있었지만, 한국인의 ‘국물 문화’ 도 살펴봐야 한다. 한국에서는 음식만이 아니라 사람의 성격을 평가할 때도 ‘국물도 없다’를 쓴다. 융통성이나 여유가 없는 사람, 지나치게 계산적인 사람을 일컫는 욕이다. ‘국물도 없는 상차림’이 한국에서 어떻게 읽히는 지 알 수 있다.  

         

국물은 사실 불필요한 것, 부수적인 것, 잉여적인 것들을 포섭하는 과정이다. 스파게티를 만들 때는 면을 삶은 국물이나 소스를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해 철저히 없애버린다. 면을 삶고 나서는 반드시 찬물에 헹구고, 소스가 바짝 졸아들 때까지 스파게티를 끓여야 한다. 하지만 국수는 면을 끓이기 위해 부었던 물을 버리지 않는다. 양념과 함께 요리 속으로 자연스럽게 면을 끓인 물을 끌어들인다. 국물을 내는 것은 불필요한 것, 부수적인 것, 잉여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살려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우리 음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국물 문화는 ‘탈 코드적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밥과 국, 건더기와 국물이 함께 뒤섞여 있는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는 탈코드의 의미는 글자 자체에도 숨어 있다. 음식의 음(飮)은 마시는 것을 뜻하고, 식(食)은 먹는 것을 뜻한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 음식은 ‘다베 모노’다. 먹는 식(食)과 물건 물(物)의 조합이다. 먹는 물건이 아닌, 마시고 먹는 것이 음식이다. 이러한 국물 문화 때문에 한국에서 도시락이 발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꼭 국물이 함께 있어야 도시락이 팔렸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국물 문화는 1인 가구의 증가, 여성의 사회진출, 야근의 일상화에 따라 위협받고 있다. 간편식 열풍과 식성의 서구화는 ‘국물 없애기’를 가져왔다. 찌개를 끓이는 과정은 번거로울뿐더러 한 번에 다 먹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한 학자는 산업적 농업과 산업적 식품 기업으로 인해 지금까지 음식 선택의 지침이 되어준 전통적 음식문화가 파괴되었고 그 결과 우리의 건강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1962년 4.8g이었던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은 2016년 64.1g으로 50년 새 15배 급증했다. 당류의 증가는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라는 측면에서 위험하다.           


지금의 ‘국물 없애기’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했던 많은 것들을 없앨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다. 불필요한 것들을 포섭해서 새롭게 만들고, 경쟁보다는 조화를 중시한 전통문화 말이다. 임금부터 신하까지 상을 대물려서 먹는 상차림 매너나 까치를 위해 감을 남겨주는 문화에서는 어울려 사는 사회의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식탁에 국물이 있는 ‘국물 사회’를 만들자. 국물 하나로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볼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피드백

-도입부: 중심맥락과 관련이 없다. 아빠 얘기는 그냥 ‘국물’과 관련한 사례를 쓴 느낌!

-국물이 ‘포섭의 음식’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의미를 사회적으로 끌어내는 데까지는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국물이 없어지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것인지, 국물처럼 포용하지 못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자기 얘기가 아닌 정보로 가득한 글

-결론을 국물이란 소재에 가둬버린 느낌을 받았다. 더 넓은 얘기로 확장할 수 있는 통찰을 '그래서 국물을 먹어야 한다'로 좁혀서 김이 새버린 느낌. 국물에서 출발해 적용 가능한 다른 얘기를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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