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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Aug 17. 2017

아빠의 담배를 버린 지 일주일째다

그렇게 보루 12개가 몰래 사라졌다

18시 30이면 항상 아빠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얼굴로. 구름과자를 사 왔다고 자랑하곤 했다. 담뱃값이 오른다는 뉴스에 퇴근길마다 담배를 보루로 사 와서 그만의 방식으로 저축해놓았다. 아무도 모르게.


엄마가 아빠의 담배를 탐탁지 않아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혼잣말로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냐.”라며 담배를 숨겼다.


오빠는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담배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프린트해서 읽어줬다.


반면 나는 아빠의 유일한 여가가 담배라는 것을 이해했다. 백종원 식당에서 외식을 한 날이었다. “구름과자 피러 다녀올게.”  하얀 막대기에서 구름이 피어나는 걸 보며 예쁘다고 생각했다. 예쁜 여가네


새벽 6시. 아빠가 피우다만 상태로 탁자 위에 놓은 담배가 사라졌다.


"여기 있던 담배 어디 갔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빠는 가족들을 상대로 묻기 시작했다. 처음은 모두 그의 실수겠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담배는 계속해서 사라졌다. 처음에는 한 갑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깊고 깊은 아지트 속에 있는 보루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야. 말로 해 말로.”


아빠는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결국 가족들을 취조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보루를 건네주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없애준다는 거래도 있고, 네이마르 이적료만큼은 안되지만 비자금을 준다며 떠보기도 했다.


범인은 앵무새야.
사람이 안 했으면 새가 했지. 뭐


아내는 깔깔 웃으며 약을 올렸다.  그렇게 보루 12개가 사라졌고 아빠는 격렬한 감정 변화를 거치며 체념했다. 체념한 그를 보며 이때다 싶어 다채로운 금연 이론이 나왔다.


먼저 아내의 간접흡연피해론. "담배를 십 년 동안 피우니 딸내미 옷에 담배 냄새가 배잖아, 글쎄." 가족들의 피해를 생각해서 금연을 하라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아들의 디스크 재발론. "디스크 다시 재발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평생 누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며 공포를 자극하는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딸의 대체재론. 니코틴이 없다는 전자 담배를 사서 선물하는 햇빛정책이다.


대답은 아빠의 유행어가 대신했다.  

오래 살아 뭐하노.
먹고 싶은 거 먹고 일찍 죽으련다


이제 아빠는 담배 한 갑을 손에 쥐고 자기 시작했다. 범인은 손에 쥔 담배를 노렸다. 범인은 아빠가 잘 때만큼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잠버릇만은 그를 쏙 빼닮은 범인이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접근했지만, 손이 꽉 잡혔다. 손의 접점이 하얘지는 동안 그의 얼굴은 성난 주전자처럼 변했다. 드디어 범인을 잡은 그는 트럼프처럼 ‘화염과 분노’를 내뱉었다.


그날이 처음으로 아빠한테 뺨을 맞은 날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아빠의 금연이었고, 시발점은 오빠가 방에 데려가서 담배가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를 설명해준 날이었다. “네가 담배를 버리면 아빠는 널 어쩌지 못할 거야.”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아빠는 지금까지 가져갔던 담배를 내놓으라며 격노했다. 골방에 갇히고, 입이 닳도록 잘못을 빌었다. 양을 천마리쯤 세고 나서 방문이 열렸고, 아무도 금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금연이 물 건너간 줄 알았다.


아빠의 금연은 2017년도에야 이뤄졌다. 그것도 가족들의 계략 없이 스스로. 어느 겨울날에 빨간 맨손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입술 표피에 담배가 붙어서 뜯어졌다는 것이다. 피맛을 느끼며 담배에 붙은 껍질을 떼는데 악취가 났다고 했다. 그 악취는 늙음을 실감하게 했고,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심만으로 금단 증상 한 번 없이 담배를 끊어내는 모습을 보니 허탈했다. 몇 년 동안 담배를 몰래 버리기위해 첩보활동을 벌인 내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저렇게 쉬운 거면 그 동안은 왜 안 했대. 결국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심해야 가능한 거다. 금연을 위한 잔소리와 각종 규제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굳이 규제의 업적을 찾자면 내 얼굴에 길게 새겨진 흉터뿐이다.


*제목: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의 첫 문장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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