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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Feb 04. 2019

울산 생활


울산은 내 고향이다. 단, 6년만 서울에서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울산에서 다시 산다는 게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울산에는 초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많고, 가족들도 있다. 익숙한 동네에 순대를 된장에 찍어먹는 익숙한 식성까지 거드니 울산으로 돌아가는 일은 즐거웠다.    


간호학과를 27살에 다시 가서 내가 겪는 애로사항은 이과공부가 아닌 울산 생활이다. 쌍팔년도가 따로 없다. 정치와 사회, 젠더 이슈에 대해 타파했다고 생각했던 상황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혼자 좌절한다. 


먼저, 여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학교에서 20살 친구들이 꺼내는 말에 기겁한 적이 있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에 ‘학교와서 공부하느라 고생하지 말고 시집이나 가지 그랬어요?’라는 말을 하는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생각해서 말해줬는데 왜 그러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나는 조근조근 여자가 왜 직업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했다.      


이런 일은 방식을 바꿔서 계속해서 반복됐다. 소개팅에서는 ‘여자가 그거 조금 벌면 뭐해요? 그냥 집에서 살림해요’라는 무례한 말을 로맨티스트처럼 하질 않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27살 여자애를 재교육시키다니 부모님이 깨어있네’라는 말을 칭찬으로 했다.     


‘요즘 30살은 과거의 30살과 다르다’는 기획기사를 썼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여기서는 ‘30살은 그냥 30살이다’라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더불어서 나는 내가 결혼적령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이 동네에서는 내가 결혼적령기라는 사실을 매순간 모든 사람들이 일깨워준다. 공부는 늦게 시작했지만 결혼 시기만은 놓치지 말자라는 어른들의 굳건한 눈빛이 부담스럽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예쁘게 꾸미고 엘리베이터를 탄 날, 어른들에게 들은 말은 이것이다.

“활짝 피었으니 이제 예쁘게 시집갈 일만 남았네.” 여자를 꽃에 비유해서 말하는 일 때문에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어떤 곤욕을 당했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친구들은 결혼적령기에 솔로이면 큰일날 것처럼 말한다. “그러다 좋은 사람 다 놓쳐” 등 떠밀려 나간 소개팅에서 남자들은 당연하게 “가족들은 어떤 일 하세요?”를 물어본다.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다수결에 밀렸다.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철없이 대했고, 교장선생님처럼 훈화말씀을 하곤 했다. 훈화말씀은 보통 ‘네가 서울에서 있다와서 여기를 잘 몰라서 그런데~’로 시작했다.      


원래 나는 게을러서 화장을 안 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만 화장을 하고 나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데일리 풀메이크업을 하게 됐다. 여기에는 화장을 안하고 나간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걱정이 꼬리를 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급기야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서 번개처럼 화장을 해주기도 했다.      


명절에 놀러간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면 ‘명절은 가족들이랑 보내야지’라는 말이 당연하게 나오는 사회. 가족보다 개인이 중요한 나에게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말하는 사회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게 4차원이라는 딱지를 붙일 때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정치, 동성애 얘기는 시작할 엄두도 못 냈다. 학교에 좋아하는 다문화 교수님이 있다. 다문화 이웃들을 포옹해야한다는 수업을 했다가 어떤 학생이 총장실에 교수님이 빨갱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교수님께는 어떤 학생이 총장실에 여성우월주의자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런 일들이 1년 동안 반복되면서 나는 말을 잃어버리게 됐다. 참하고, 조신하고, 순종적인 여자를 연기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소개팅을 통해 사람을 사귀고나서 3개월이 지나자 ‘제가 생각했던 성격이 아니네요’ 이러면서 차였다. 어제부로 나는 벌써 두 번째로 차였다. 내일 이 모든 한을 다 풀기위해 서울친구들을 만나러 떠날 예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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