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생망 Feb 26. 2019

결핍에 관하여

<향연>을 읽고

사랑에 관한 주제는 많은 책과 영화에서 다루고 있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수 십 개에 달하니, 사랑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이 지은 <향연>은 술자리에서 저마다 사랑에 대해 늘어놓은 이야기로 구성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행복한 삶을 논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유,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에는 욕망이 담겨있다고 정의했다. 자신에게 있는 결핍을 욕망하는 일이 사랑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내 경우에도 내가 가지지 않은 좋은 점을 상대방이 가졌을 때 호감이 시작됐다. 내향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을 때는 외향적인 사람에게 끌렸고, 박학다식해지고 싶을 때는 똑똑한 사람에게 끌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는 존재다. 어느 한 곳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 완벽을 갈망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핍을 욕망하는 일로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이때, 외향적인 연인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내가 사랑했던 욕망을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여기에 현실적인 이유로 내게 있는 결핍과 상대방의 결핍이 충돌할 때가 있다. 거리와 경제적 문제들로 예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사랑을 와장창 무너뜨렸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신에게 있는 결핍을 욕망하는 일이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자신에게 있는 결핍을 공유하면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괴생명체와 여주인공이 결핍을 공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을 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은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 괴생명체에게 사랑을 느낀다. 서로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면서 자신의 결핍을 치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들과 다르게 말을 못한다는 시선에 매여 살아왔던 여주인공은 괴생명체가 자신을 남들과 똑같이 바라봐준다고 행복해한다. 서로의 결핍을 공유하다보니 결핍이 해소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의 결핍을 해소하는 사랑은 좀 더 완전한 단계로 올라간다. 디오티마가 비유했듯이 사랑의 단계는 계단과 같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점점 높은 곳으로 계단을 오르듯이 여러 가지 밟아야 할 단계가 있다. 육체, 영혼, 학문의 아름다움을 거치면 아름다움 자체의 세계를 보게 된다. 최종 목적지인 아름다움 자체의 세계는 절대적이고, 순수하고, 아무 것도 섞이지 않고, 사람의 육체나 피부색, 유한한 생명을 가진 것들에 의하여 오염되지 않는 신성하고 단일한 형상을 지닌 것이라고 하였다. 디오티마는 ‘이러한 세계를 바라보고 그와 연관되는 삶을 살려고 하는 인간의 삶이 비천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유는 디오티마의 말에서 힌트를 찾았다.  


 <향연>에서 아름다움은 가치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완전하게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비천하게 살지 않게 된다. 자신의 욕망만 추구하는 사람은 가치에 대해 느끼지 못하지만,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욕망에 휩쓸린 자신에 대해 반성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결핍을 해소하는 사랑을 하는 이유는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호감과 사랑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겉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일이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고, 내게 있는 결핍이 강하게 부각되면서 결핍을 치유해보려는 노력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 친구는 연애를 하고 나서 배려에 대해 배웠다고 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성숙해지는 과정은 가치있는 사람이 되게 했다. 


 디오티마와 소크라테스는 가치있는 것을 소유하게 되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사랑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가치있는 것은 사랑 외에도 여러 가지다. 돈, 직업, 자아실현 등이다.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여주인공은 사랑 하나만 가지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사랑은 여주인공에게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게 했다. 탬버린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남들의 시선과 부조리에 굴복하던 여주인공은 사랑을 통해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는 회사에서의 미투운동으로 이어져서 조직에 변화를 일으킨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가족들의 반대가 나왔다. 사회적 관습과 경제적 이유로 인한 가족들의 반대는 사랑을 가져도 행복하지 않게 만들었다. 다행히 가족들의 반대를 이겨냈지만, 조직 내의 미투 운동이 해고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사랑은 행복을 얻기 위한 행위지만 그 자체로 행복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삶이란 사랑을 수단으로 전방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향연>을 읽으면서 결핍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친구들과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몇 백 년 전의 철학자들이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경이로웠다. 철학자들은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사랑의 목표’라는 말을 했다. 이걸 생각하면 지금의 시위현장에서 볼 수 있는 ‘내 아이에게는 물려주지 않고 싶은 세상’이라는 표어가 이해된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 좋아하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