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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Jul 21. 2019

대충 대충 살기

대충 살게 된 계기가 있다. 대충의 반대편에는 완벽주의가 있었다. 무엇을 하나 하려해도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지쳤다. 공부를 하기 전에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보고, 완벽하게 짠 계획을 하루 시행하고 지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보니 무계획이 좋았다. 사실 완벽한 계획을 짜려고 준비하는 시간이 무계획이 되어버리는 거지만.


무계획을 반복하며 본 세계가 있다. 준비하는 시간보다 직접 하는 시간이 더 가치있었다. 준비만 했을 때는 얻는 게 없었는데,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시작하니 어느새 완성되어있었다. 브런치글도 완벽하게 하려니까 정체기였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자는 생각으로 했더니 차곡차곡 브런치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대충 살기 예찬이지만, 후회될 때도 있다. 뭐 하나를 제대로 못 하는 느낌이다. 브런치글도 맞춤법 틀린 글을 발견할 때마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 글에 필요 이상의 애정도 생기지 않는다.  

완벽주의로 쓴 글은 고되지만 필요 이상의 성과를 내고 돌아오고, 애정도도 만땅이다. 정말 대충 쓴 글이기 때문이다. 글보다는 일기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문화해설사 일은 대충의 극치다. 원고없이 20분간을 해설해야하기 때문에, 완벽주의 원고를 만들어놔봐야 상황에 따라 다 까먹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발표처럼 원고를 보고 읽을 수도 없다. 상황에 따라 해설을 길게 듣고싶은 사람과 짧게 듣고 혼자 보고싶은 사람이 나뉜다.


오늘은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에서의 해설이 있는 날이었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 관광객의 목적은 주로 주말에 행복한 한 때를 보내기 위함이다. 특히 아빠와 딸이 왔다면 더하다. 연속 두 팀이 모두 짧게 해설을 듣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세 번째도 그렇게 판단했다.


나는 해설을 할 때 질문도 많이 하고, 눈을 바라보며 하려고 노력한다. 아버님이 해설해달라던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눈을 봤는데, 지루해하고 있어서 짧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화재 해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반찬일 뿐이다. 억지로 문화재 해설을 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버님은 듣기 싫은 아이 앞에서 내가 한 시간 이상을 해설해주길 원했다. 그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할 말 키워드들을 잊어버렸다. 원고를 만들어놓지 않았으니, 키워드를 기억해내도 말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형편없는 해설을 해버렸다.


관람객의 사정이 어찌됐든 나는 프로적인 자세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설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해하는 아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내 역할이다. 그래서 완벽한 원고를 만들어서 1부터 10까지 줄줄 나오도록 왜 외우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하며 운동을 하고 있다.


대충 살았더니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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