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를 열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나는 우연히 도노 헤이하치로제독의 신사를 방문하였고, 그의 위패를 모신 신사가 신주쿠 중심에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도노제독은 러일전쟁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괴멸시킨 일본제국군의 상징적인 군인이였다. 순간 나는 그의 선조가 혹 임진왜란에 참여한 장수가 아닐까 했지만 직접적인 조상은 없었고, 현 가고시마현의 하급 무사 계급 출신으로 알려졌다. 학창시절 역사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갑자기 기억났다. 임진왜란을 겪은 다수의 장수들이 에도시대를 열었고, 그들에 의해 메이지유신을 거쳐 제국을 이루어 냈다는 내용을. 이들을 추적해봐야 겠다.
1592년 봄, 바다를 건넌 왜군의 깃발은 조선 남해안에 검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임진왜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통일의 여세를 몰아 대륙으로 향하려 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일본의 역사에도 깊은 상처와 교훈을 남겼다.
조선을 짓밟았던 장수들은 전쟁이 끝난 뒤 일본으로 돌아가 서로의 칼끝을 겨누게 된다.
그 마지막 결전이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였다.
이 싸움은 단순한 권력다툼이 아니라, 일본이 260년 동안 어떤 질서로 살 것인가를 결정한 전환점이었다.
시마즈, 패배 속의 생존 전략
조선 남쪽에서 끝까지 싸웠던 장수가 있었다. 사쓰마(현 가고시마)의 시마즈 요시히로.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의 퇴각을 지휘한 그는, 귀국 후에도 또 한 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그는 서군, 즉 도요토미 편에 섰지만, 놀랍게도 살아남았다. 그의 전투력과 책략을 높이 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를 용서했다. 시마즈 가문은 이후에도 사쓰마 번으로 존속하며 독자적인 부를 쌓았다.
2세기 후, 그 후손들이 일본의 근대를 열게 된다.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바로 사쓰마 출신들이었다.
임진왜란의 패장이 남긴 번이 결국 메이지유신의 주력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모리 가문, 몰락에서 부활로
조선 침략군의 총사령관으로 이름을 올린 이는 모리 테루모토였다. 그는 세키가하라에서 패하여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그러나 그 잔존 세력은 조슈(현 야마구치현)로 옮겨, 한 세기 후 일본 정치사의 중심 무대로 되돌아왔다. 바로 그곳에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등장한다. 조슈번은 낡은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일본을 세운 메이지 정부의 핵심 축이 되었다. 패자의 후손이 새로운 질서를 만든 셈이었다.
가토 기요마사, 전쟁의 기술에서 행정의 기술로
임진왜란 때 평양까지 진격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군사적 재능뿐 아니라 행정력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쌓은 성과 축성 기술, 토목술, 농정 관리 능력은 훗날 구마모토 지역의 번정(藩政)을 이끌었다. 그의 후손이 다스린 구마모토는 에도시대 내내 안정된 경제 번으로 성장했고, 메이지유신 때는 신정부 편에 서서 조용히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도쿠가와와 다테, 질서의 뼈대를 세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직접 군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냉정하게 전쟁의 결과를 관찰하며 ‘힘이 아니라 질서가 나라를 지킨다’는 교훈을 얻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그는 에도 막부를 열었다. 일본은 260년간 ‘전쟁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 질서 아래에서 다테 마사무네 같은 영주들은 각자의 번을 발전시켰다. 센다이 번은 해상 무역과 토목으로 부를 축적했고, 그 후손들이 메이지 시대의 산업화 초기에 도호쿠 지방의 근간을 이루었다.
전쟁에서 제도로, 제도에서 근대로
임진왜란의 장수들은 대부분 조선에서 패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무사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행정·외교·조직의 감각을 배운 세대였다. 그 경험은 일본의 각 번(藩)에 녹아들어, 지역별 자치와 산업 기반을 만들었다. 이 구조가 훗날 메이지유신의 토양이 된다. 즉, 임진왜란은 단지 외침의 역사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일본 근대국가의 뿌리, 그리고 사무라이가 정치가로, 정치가가 기업가로 변모하는 체제적 진화의 출발점이었다.
역사의 역설
조선을 불태운 불길은 일본 내부를 단련시켰다.
전쟁의 상처는 한반도에 깊은 흉터를 남겼지만, 그 불길을 견뎌낸 일본은 에도라는 안정의 시대를 거쳐 결국 메이지라는 근대의 문으로 들어섰다. 어쩌면 그 불행한 전쟁은 ‘싸움의 시대를 끝내는 방법’을 일본에게 가르쳐준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배움의 결과가 세키가하라의 승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이룬 메이지유신이었다.
위의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나는 또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조선은 망하고 새로운 질서의 시대를 맞이하지 못했을까. 임진왜란에서 극복한 것은 결국 의병들이였고, 민초들이였건만 왜 기존질서는 무너지지 않았던 걸까. 임진왜란의 피의자들이 앞서나가는 사이 피해자인 한국은 왜그리도 뒤처지게 된 걸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오늘 내 앞에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