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어떻게 재생되고 있는가
앙코르와트는 세계 최대의 종교 건축물이자, 인류 문명의 기념비다. 하지만 캄보디아를 생각할 때, 많은 이들은 ‘킬링필드’라는 단어를 함께 떠올린다. 찬란한 과거와 참혹한 근현대사가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나라, 캄보디아. 이 나라는 어떻게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을까?
찬란했던 크메르 문명 – 앙코르의 시대
크메르 제국은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동남아시아를 지배한 대제국이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앙코르와트는 단지 사원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 그리고 왕권이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의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12세기 수리아바르만 2세는 힌두교의 비슈누를 숭배하며 앙코르와트를 건립했고, 이후에는 불교 사원이 되기도 했다.
수로와 제방으로 구성된 정교한 관개 시스템, 천문학적 배치, 인공 호수인 바라이(Baray)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선 문명의 역량을 보여준다. 크메르 문명은 단지 ‘화려했던 유산’이 아니라, 동남아 고대 정치·기술·건축의 절정을 상징한다.
앙코르 이후 – 쇠퇴와 침묵의 시간
그러나 제국은 몬순의 변화, 수리 시스템의 붕괴, 내부 갈등, 시암(태국)의 침공 등 복합적인 이유로 급격히 쇠퇴했다. 15세기 중엽 앙코르에서 수도가 철수한 이후, 이 찬란한 도시는 정글 속에 묻힌 채 수세기를 보내게 된다.
캄보디아는 이후 시암과 베트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점차 주권을 잃어갔다. 19세기에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고, 독립 후에도 왕정, 쿠데타, 내전이 이어졌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캄보디아는 과거의 위대함을 기억할 힘조차 잃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크메르루즈 – 문명을 파괴한 혁명
1975년,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 정권이 수도 프놈펜에 입성하며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원시 공산주의’라는 급진적 이념을 내세워 도시를 비우고 모든 국민을 농촌 공동체로 강제 이주시켰다.
불과 4년 동안 약 200만 명이 굶주림과 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앙코르와트가 보여주던 고도의 지성과 예술성은 완전히 짓밟혔다. 지식인, 승려, 외국어 사용자까지 학살의 대상이었다. 크메르 제국의 후손들이 만든 문명은, 그 후손의 손에 의해 파괴된 셈이다.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다 – 문화유산과 기억의 복원
1980년대 이후, 유엔과 국제사회, 그리고 내부 생존자들의 노력으로 캄보디아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앙코르와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한국, 일본, 프랑스 등이 복원 사업에 참여했다. 오늘날 앙코르와트는 국가 경제의 핵심 관광 자산이자, 국민적 자긍심의 상징이다.
흥미로운 점은, 크메르루즈가 파괴하지 못한 유일한 정신적 자산이 바로 앙코르였다는 것이다. 정글에 묻혀 있었기에 살아남았고, 그 무게 덕분에 다시금 민족의 기억을 재건할 수 있었다. 현재 젊은 세대는 앙코르의 유산을 통해, 자신들이 단지 ‘킬링필드의 후손’이 아니라 ‘문명을 세운 자들의 후손’임을 되찾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 캄보디아의 미래를 위한 조건
앙코르와트는 단지 관광지가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 가능했던 시대를 증명하는 유산이며, 동시에 폭정 이후 회복을 위한 근거다. 캄보디아는 이제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봉합하는 것을 넘어, 그 상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려 하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캄보디아는 이제 그 기억의 토대를 다시 세우는 중이다. 앙코르의 빛과 크메르루즈의 어둠이 교차하는 이 땅에서, 역사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국민적 성찰이야말로 재생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