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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Apr 29. 2022

기역부터 히읗까지: ㅈ

종교

1.

  "근데, 내 진짜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아침이라 더 반가운 미역국을 한 술 뜨기 전, 맞은편 고개 숙인 독실한 크리스천에게 묻는다. "어, 뭔데?" 식전 기도를 마저 끝내고서야 돌아오는 대답.


"이거, 놀리는 거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그간의 속앓이를 털어놓을 생각에 벌써부터 후련해진다. "밥 먹기 전에 하는 그거, 속으로 무슨 말 하는데?" 해냈다. 너무 궁금했던 경상도식 고해성사 끝. 질문을 들은 동기는 수저를 들고 3초쯤 골똘히 생각하더니, "궁금하면 주말에 기지교회 갈래?" 라며 맞받아친다.


아, 이거 외통수네. 이 우문현답에 빠져나갈 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아, 내 주말에 면회라서, 그것만 아니면 가는 건데 진짜 아깝네!" 무안함에 장난스레 응수하는 스물한 살,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네. 밥이나 먹어라." 웃으며 화답해 주는 전도사님.


교회에선 독심술도 알려주냐며 마지막까지 능청을 떤 무신론자는 유보해둔 미역국을 드디어 입에 넣는다. 그리곤 두 칸에 걸쳐 받은, 케첩에 절여진 비엔나소시지와 파프리카를 씹으며 생각한다. '아, 군대에서는 이게 신이고 종교지. 쏘야 만세다 만세.'



2.

  "혹시 무슨 종교 믿으세요?" 라고 누군가 물어올 때, 늘 그 대답을 얼버무리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땐 그저 부모님의 종교를 따라갔고, 머리가 좀 굵어진 이후로는 그 '나름의 모태신앙'에서 점차 벗어나며 어떤 종교에도 귀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신론자냐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다.


내가, 혹은 무신론자인 당신이 종교인에 가까워지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내가 필요할 때'라고 표현할만한 찰나들이다. 예를 들면 매주 토요일, 10시 언저리. 늘 똑같이 응모하는 '수동 1줄, 자동 4줄' 을 통해 나를 노동에서 해방시켜줄ㅡ혹은 노동의 재미적인 요소만 추구하게 해줄ㅡ신을 간절히 찾고 있다.


녹색 창에 '로또'라는 두 글자를 입력하고 엔터를 누르는 짧은 순간에 부처와 예수, 인드라부터 알라까지 내가 살면서 들어본 모든 우상들을 죄다 불러보는 것이다. 1등, 아니 2등만 당첨되어도 나는 그의 국적도 이름도 불문하고 받들어 모실 생각이다.


또 어떤 시험이나 중요한 결과 발표, 크게 걱정되는 상황을 앞두고서도 '종교듀스101'을 자주 개최하곤 한다(센터는 늘 부처가 차지한다). 하지만 잘 되면 내 덕, 그게 아니어도 내 탓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나에게 신이나 종교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종의 요행을 바랄 때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분담해 줄 일종의 더미(dummy)가 필요할 때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이 불손하기 짝이 없는 신도를 영입할 신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아마 내가 종교를 가질 기회는 평생 없을 듯하다. 신보다 더욱 확실하고 명료한, 눈에 보이고 실존하는 확률이 그렇게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를 종교의 세계로 이끌어줄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숫자 여섯 개만 알려주시면 당장 귀의합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기필코 찾으리라 나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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