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철학

- 제22화. 탄천의 연가: 함께 걷는 길 위에 피어난 소박한 행복 -

by 방랑자 연필


제22화. 탄천의 연가: 함께 걷는 길 위에 피어난 소박한 행복


[장면: 해 질 녘 분당 탄천변, 나란히 보폭을 맞춰 걷는 작가 부부의 뒷모습과 물결 위로 부서지는 노을의 잔영]

40대 분당 시절 해 질 녘, 아내와 함께 탄천을 걷습니다.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우리의 보폭은 이미 수년의 세월을 함께하며 완벽한 리듬을 찾아냈습니다. 뺨을 스치는 시원한 냇가바람, 물가에서 노니는 오리들의 평화로운 몸짓, 그리고 서산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물들인 분홍빛 하늘. 이 평범한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벅찬 즐거움을 느낀 추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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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탄 반석산 둘레길을 걸을 때 '여보, 오늘 하늘이 참 예쁘네요.' 아내의 이 한마디에 나는 지나온 모든 세월의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듭니다. 《귀인의 필적》에서 나는 아내를 나의 가장 소중한 '귀인'이라 고백했습니다. 내가 사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릴 때, 40대의 감원 태풍 속에서 홀로 외로워할 때, 아내는 언제나 이 저녁 가로등처럼 묵묵히 내 길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하동 정서마을 만물상회의 어머니가 그러하셨듯, 아내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품으로 나의 방랑을 품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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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성공이란 대단한 권력을 쥐거나 부를 쌓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명확히 압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있고, 눈앞의 노을을 함께 감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격무에 시달리며 강남의 빌딩 숲을 헤매던 시절,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서둘렀을까요? 그때의 질주도 즐거웠지만, 지금의 느릿한 산책은 그보다 몇 배는 더 깊고 달콤한 즐거움을 줍니다.


걷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집니다. 아내의 손을 조금 더 꽉 쥐어 봅니다. 내 인생의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이유는, 고통스러운 순간마다 내 손을 잡아준 귀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홀로 걷는 길은 방랑이지만, 함께 걷는 길은 여행입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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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의 웃음소리가 밤공기에 맑게 퍼집니다. 내일도 우리는 이 길을 걸을 것이고, 또 다른 노을을 만날 것입니다. 그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기는커녕 매일매일이 새롭고 즐겁습니다.


'가장 위대한 성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한 오늘을 무사히 보내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의 철학' 연재 에세이는 내일 화요일에 이어집니다.



모닝브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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