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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토리 Jan 29. 2020

당신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사회초년생이 된다는 것


신입사원이 꼭 알아야 할 예절이 있다. 출근할 땐 모두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야 하고, 손님을 만났을 땐 45도 각도로 인사해야 한다. 단정하면서도 명랑해야 하고 환하게 웃되 실없이 웃어서는 안 된다. 상사의 취향을 파악해둬 상사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골라야 하고 수저와 물은 직급에 따라 차례로 세팅해야 한다. 상사의 말에 경청해야 하지만, 신입사원답게 활발하게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회식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상사가 권하는 술은 사양하지 말고 마셔야 하면서도, 술에 취해 긴장이 풀리면 안 된다. 이쯤 되면 이 세상에 예의 바른 신입사원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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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이 되는 건 설레는 일이다. 직장인이 되는 건 경제적으로 독립한 ‘어른’이자, 사회에서 ‘쓸모’를 인정받는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그만큼 개인에게 첫 직장은 중요한 의미고 첫 직장의 기억은 평생 간다. 바꾸어 말하면, 첫 직장의 경험이 어그러지면 사회생활 실패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직장은 위계적인 공간이다. 그 가장 밑바닥엔 사회초년생이 있고 사회초년생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설거지는 ‘막내’가 하는 거라며 상사의 도시락통을 설거지하는 일, 술에 취한 상사의 차를 운전해 상사 집 앞까지 픽업하는 일, 상사의 개인 여행 일정을 대신 알아봐 주는 일, 화분에 물을 주는 일, 일찍 출근해 사무실을 청소하는 일은 사회초년생의 (비)공식 업무가 된다.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일을 배워 멋진 직장인이 되길 꿈꿨으나, 꿈일 뿐이라는 걸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그나마 직장 내 괴롭힘이 이슈된 후, 이런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냐며 질문할 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는데..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사가 업무 외 사적인 일을 강요한다는 비율은 30%였다. 이를 연령대별로 구분하면 20-30대는 30%를 웃돌았고, 40-50대는 30%에 미치지 못했다. 부당지시를 당한 경험도 유사했고,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많은 직장 내 괴롭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는 설문결과를 통해 드러난 숫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재밌는 건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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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한민국 갑질지수는 35점으로 나타난 반면, 2019년 갑질지수는 30.5점으로 4.5점 감소했다.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었는지 묻자, 39.2%가 줄어들었다고 응답해 법 시행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30대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36.8%에 불과했지만, 40-50대는 44.1%가 줄어들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한편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는 상급자가 48.1%인 반면 동료나 하급자는 18.7%와 1.8%에 불과했다. 연공서열제도가 우세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나이가 많을수록 연차가 높고, 높은 직급을 가질 확률이 높다. 즉 주된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된 상급자는 연령대가 높을 개연성이 큰 것이다.

    

정리하자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일 가능성이 높은 연령대는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은 연령대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권력자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권력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쉽게 편안함을 느끼지만, 권력이 없는 쪽은 불편하거나 때로는 불안감을 느낀다. 권력 위에서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당연히 주어진 거라고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성찰하기를 게을리한다. 간극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이 어째서 괴롭힘인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성찰을 게을리 한 결과다.   


성찰하는 어른이 되자고요

라떼 조아

‘라떼충’이라는 말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며 자신의 과거 경험을 들먹이면서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라떼충’ 혹은 ‘꼰대’라고 한다. 한국은 유난히 압축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사회 변화가 빠르고 압축적인 만큼, 사회 구성원의 경험 또한 폭넓고 다양하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가치관과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한다. 그러니 많은 경우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된 말은 도움이 안 된다. ‘나 때는’ 이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노력해서 이겨냈다는 식의 일방적인 ‘조언’은 오히려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하거나 답답하게 만든다.    

 

위계적인 직장에서 사회초년생은 어쩌면 가장 ‘만만한’ 존재가 맞다. 새로운 공간에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숙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정당화할 수 없다. 사회초년생에게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일을 지시하는 것은 사회초년생이 성장할 시간을 빼앗는 것이고 법적으로는 근로계약 위반이자 직장 내 괴롭힘이다. 괴롭힘인지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구도 법을 위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법은 최소한의 규칙이자 개인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무심한 말과 행동이 직장 내 괴롭힘이 되어 버리는 상황은 서로에게 최악이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순간,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가 될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의 가치관과 감정을 존중하고 알아차리려 노력할 때 비로소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예방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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