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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토리 Apr 22. 2023

펫로스 일기

펫로스란 말

지독한 짝사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불러도 날 보러 와주지 않지만, 오늘도 틈틈히 강아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또 울었습니다. 아마 그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울었던 것 같네요. 일부러 강아지를 떠올리지 않고, 일부러 강아지 생각을 억누르지도 않습니다. 단지 빈 틈이 생길때마다 강아지 생각이 올라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을 때마다 강아지를 생각하고, 또 눈물이 쏟아집니다. 강아지를 잃은 후에야 눈물이 쏟아진다는 걸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눈물은 뚝뚝 흐르는게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집니다. 특히 버스나 전철에서 자꾸 웁니다. 


어쩌다 보니 강아지가 죽게 됐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내 강아지 자랑을 어찌나 하고 다녔는지, 주위 사람들이 강아지 안부를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강아지가 갑자기 죽었어요. 라는 비현실적인 문장을 다 끝내지 못하고 또 울어버립니다. 그래서 요즘엔 누군가 내 강아지 안부를 물어볼까봐 사람을 만나는게 꺼려지기도 합니다. 


펫로스란 말이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거나, 별이 됐다거나, 소풍을 끝냈다거나 하는 추상적인 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강아지가 죽었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나는 너무 슬픈 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서 추상적인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이 이토록 한끝 차이라는걸 강아지를 통해 똑똑히 배우는 중입니다. 추상적인 표현은 죽음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오히려 슬픔을 억누르고 기만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강아지가 죽었다고 말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펫로스라는 건조한 표현이라도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울다가 생각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처럼 시간이 갈수록 마음 속 구멍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요. 어찌됐든 좋습니다. 이 또한 내 강아지가 남겨준 것이기 때문에 펫로스 증후군이라 이름 붙여 치료하려 시도하지 않을겁니다. 강아지와 함께한 날들이 너무 행복해서, 그래서 더 많이 슬픈거라면 이 마음 역시 강아지와 함께할 때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내 강아지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스토미는 풍선을 좋아했다. 풍선이 보이면 빨리 달라고 긁었고, 풍선을 크게 불면 무섭다고 뒷걸음질 쳤다. 학습지업체가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는 마케팅을 할때면, 스토미도 풍선이 갖고싶어 그 곳만 쳐다봤다. 스토미 소원 들어주겠다고 풍선 나눠주는 곳에 가서 강아지가 갖고 놀게 작게 불어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몇번 있다. 귀여웠던 순간이다. 잘근잘근 풍선을 갖고 놀다 터지면 풍선이 사라진 줄 알고 집안 곳곳을 수색하곤 했다. 바보같은 놈. 그러다 터진 하늘색 풍선을 삼킨적이 있는데, 다음 날 똥으로 하얀 풍선이 나왔었다. 인간보다 소화력이 좋은 강아지는 하늘색은 소화했지만 차마 풍선까지 소화하진 못했다. 이 날 스토미는 산책하다 구석으로 가더니, 버려진 풍선 하나를 물고 나타났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스스로 장만하는 기특한 강아지다. 2016년 5월. 5살 스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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