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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물

나는 더 이상 책을 선물하지 않는다

by Magic Finger

책 선물


작업실을 정리하며 책을 모두 집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책장을 버리고 온 탓에 옮겨온 책을 방바닥에 그대로 쌓아 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책 일부를 처분하기 위해 중고 서점에 팔러 갔다. 가져간 책 대부분이 등급 ‘상’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은 깨끗한 책이 ‘중’ 등급을 받은 것이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직원은 책 겉장을 펼치고 ‘여기 서명이 있어서요’라며 책 면지를 톡톡 두드렸다.


아뿔사! 나는 그 책을 선물로 받고서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책이 어디서 났는지 처음에는 기억해내지 못했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책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그 분에게 왠지 미안했다. 어쩌면 그 분이 그 책의 저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가 그 분의 닉네임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책을 통해 읽고 알아봐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도 책을 주신 선생님의 서명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다들 이렇게 서명을 하고 책 선물을 준 것이다. <서재 결혼 시키기>라는 책을 보면 버나드 쇼가 헌책방에서 자신이 서명을 하고 선물했던 책을 발견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그 분 역시 나에게 선물했던 그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배반을 목격하게 되는데, 가끔은 헌사를 쓴 사람이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버나드 쇼는 헌책방에서 " ____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지 버나드 쇼가"라는 헌사가 적힌 자신의 책을 발견한 적이 있다.”
----- <서재 결혼 시키기> ‘면지에 적힌 글’에서 -------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당연하다는 듯이 책을 선물했다.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했고 휴식 시간에는 가벼운 책을 읽으며 머리를 식혔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즐거움이던 사람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매개로 알게 된 사람이었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요즘 어떤 책을 읽는지, 재밌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어떤 장면이 흥미로왔는지, 이런 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때 그것은 늘 책이었다. 내가 읽고 감동을 받았던 책들이나 상대방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준 것은 아니며 상대의 독서 취향을 고려해 책을 고르긴 했지만 말이다.


최근 몇 년 내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책 선물이 상대방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을실감했다.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스레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책이 아닌 다른 선물을 받을 때 더 기뻐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는 더 이상 책을 선물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통해 역지사지의 자세도 함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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