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과 돌려 읽기의 실천
얼마 전 양갱 님에게 책 나눔을 했다. 온화한 성격의 양갱 님은 잔잔한 소설이 어울릴 것 같아서 감동 소설을 보냈고 아들 민호 군을 위해서는 학습 만화를 동봉했다. 다행히 양갱 님은 기쁘게 책을 받아주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내가 책 나눔을 시작한 것은 2008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책을 권해보겠다는 취지였다. 사실 책 나눔은 알군의 아이디어였다. 알군은 엄청나게 책을 읽어댔고 다 읽은 책이 스무 권 가량 모이면 책 나눔 포스팅을 올렸다.
그러면 우리 이웃들은 벌떼처럼 달라붙어 갖고 싶은 책을 댓글로 남겼다. 책 쟁탈전까지는 아니지만 다들 책 욕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기 때문에 갖고 싶은 책에 대한 열망도 치열했다.
그 와중에 서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배려 없는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갖고 싶은 책이 겹치면 서로 양보하고 양해도 구하며 책을 골고루 돌려보는 분위기가 싹 텄다. 알군의 책 나눔을 계기로 이웃들도 하나 둘 책 나눔을 시작했다. 나도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책 나눔을 시작했다.
먼저 책을 읽고 나면 언젠가 다시 읽게 될 책인지, 좋은 책이지만 더 이상 읽지 않을 책인지, 별로라서 다른 이들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인지 구분한다. 다시 읽을 것 같은 책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별로인 책은 과감하게 쓰레기통으로 보낸다.
좋은 책이지만 더 이상 읽지 않을 책들은 나눔을 한다. 나눔 할 책들은 적절한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대기한다. 적절한 입양자라고 하면 그 책을 받고 가장 반갑게 읽어줄 사람을 말하는데, 책은 개인의 취향이 매우 강한 영역이다 보니 어설프게 책을 건넸다가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과정은 책 나눔에서 시간과 노력을 가장 많이 들여야 한다.
우선 책과 매칭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책과 사람은 “궁합”이 있어서 궁합이 잘 맞을 때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다. 감동을 최고로 끌어올려 줄 좋은 짝을 찾는 데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 성향, 책 취향, 최근의 관심사 등 온갖 요소들을 모두 살펴본다. 이 과정이 그리 녹록치는 않다. 그 사람의 독서 욕구를 찬찬히 그리고 꾸준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울린다 싶은 책이 없어서 책을 한 권도 주지 못한 사람도 있고 여러 권을 나눔 한 사람도 있다. 적절한 입양자를 찾지 못해 아직도 내 품에 남아있는 책들도 있다. 어떤 것이든 짝을 찾는 일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같다.
책을 나눔 한 후 돌아오는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책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꼭 읽고 싶었던 책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읽고 나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어서 책을 받고도 시큰둥한 사람이 있다. 이 경우는 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가 처분하기 위해서 줬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내가 책 장사도 아니고 신도 아니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아주 신기한 경우도 있었는데 한 번은, 책을 받기 며칠 전에 헌책방에서 보아 두고 조만간 가서 사려고 기억해 둔 책이었다고 했고(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 또 한 번은, 헌책방에 들어오면 사려고 기다리고 있던 책이라고 했다(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두 경우 모두 나도 상대방도 신기하다며 놀라워했고 이런 경우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책 나눔을 하는 이유는 책을 읽고 좋았던 점들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어서이다. 내가 읽고 누린 즐거움과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러니 상대방이 고마워하든, 아니든,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거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나도 사람인지라 상대가 좋아하거나 고맙다고 해주거나 보답으로 책을 보내주면 흐믓해지고, 고마워하지 않거나 심드렁한 모습에는 서운하거나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되도록 의연하려고 노력한다.
책 나눔에 대한 보답으로 좋은 책을 받기도 한다. 책 나눔을 통해 내 관심사에서 멀었던 책을 접할 기회도 생기고 내가 몰랐던 책을 알게 되는 기회도 생긴다. 이것이 책 나눔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인 것 같다.
간혹 진짜 ‘버릴’ 책을 선물해주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는 당혹스럽지만 아마도 내가 어차피 버릴 책을 준 것이니 자신도 버릴 책을 나에게 준 것 같다.
나는 책을 선물 받고 바로 읽는 편은 아니다. 그 책이 읽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내 마음이 강하게 그 책을 끌어당기면 그 때 읽는다. 책을 다 읽으면 리뷰를 쓰고 나서 책 나눔을 해 준 사람에게 리뷰를 보여주거나 소감을 말해준다. 책 나눔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가 책이 읽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내가 책 나눔을 해준 사람도 책이 읽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읽으려니 한다. 그 사람에게도 언젠가 그 책이 읽고 싶어질 순간이 올 것이다. 저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책과 사람은 “만나는 시점”이 있다. 그 시점에 만나야 감동이 최고조에 이르고 마음 속에 가장 잘 녹아든다. 그러니 내가 준 책을 빨리 읽어보라고 다그칠 수 없다.
또 내 손을 떠난 책은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니다. 상대방이 그 책을 읽든 버리든, 일 년 뒤에 읽든 십 년 뒤에 읽든 그 사람 마음이라는 것.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책에서 받은 감동과 즐거움을 다른 이들도 맛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책 나눔을 한다. 편하게 책 나눔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나는 나의 방식을 고수할 것이다. 내가 책을 읽는 한, 그리고 책과 함께 하는 감동과 즐거움이 계속 되는 한, 나의 책 나눔은 계속될 것이다.
(201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