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와 글

삽화의 양면성

삽화가 있는 게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없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더라

by Magic Finger



★동전


그림이라는 것은 글자보다 눈에 더 잘 들어오고 이해도 쉽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책에 그림을 넣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삽화가 들어가면 언뜻 보아도 눈에 확 들어온다. 이런 목적으로 책 속에 삽인된 그림들, 곧 삽화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삽화란 그림책과 달리, 글이 주가 되고 그림은 부수적으로 삽입된 경우를 말한다.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해 혹은 분위기를 만들어줄 요량으로, 작가가 넣은 것이 아닌 출판사에서 나름의 그림들을 임의로 집어넣은 것들이다. 십에 팔구는 책의 분량이 적을 때 양을 늘리는 방편으로 이용된다.



★앞면


나는 삽화가 들어간 책을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다. 책을 금방 읽을 수 있고 보기에도 예쁘고 분위기도 부드러워지니까. 그리고 책 내용에 어울리게 그림을 그려냈다는 데서도 흥미로움을 더한다. 또한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효과가 큰 것처럼 나도 삽화 때문에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경험이 있다.

초등학생 때 추리소설 열풍이 불었다. 해문 출판사에서 나온 팬더 추리걸작 시리즈였던가. 반 아이들은 그 시리즈의 책들을 돌려가며 읽었는데 나도 그 열풍에 힘입어 추리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이 시리즈를 열심히 읽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림 때문이었다. 책 내용도 아주 재미가 있었지만 대단히 특색이 있는 그림이었는데 나는 그 그림 때문에 그 시리즈가 좋았다.



★뒷면


삽화가 없었으면 하고 느낀 적이 몇 번이 있다. 한 번은 시집을 읽을 때였다. 삽화가 유려한 그림이었고 책의 분위기도 잘 나타내고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는 삽화 없이 글자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를 곱씹으며 머릿속으로 실컷 상상하고 싶었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는데 시 사이사이에 그려 넣은 삽화들이 자꾸 상상을 방해했다. 평소에는 시집에 삽화가 들어가면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때는 내가 시를 읽으며 떠오르는 느낌이 삽화로 나타난 것과 달랐기에 거슬렸던 것 같다.


한 번은 소설에 실린 삽화에 실망한 적이 있다. 조카에게 선물할 소설을 고르기 위해 서점에 갔을 때였다. 고민 끝에 카프카의 <변신>을 사기로 했다. 비교적 분량도 적고 내용도 흥미진진해 고등학생이 읽기에 제법 알맞은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출판사의 책을 고를지 번역된 문장들을 읽어보며 살펴보는데 강렬한 그림이 들어간 <변신>을 발견했다. 강한 터치의 그림이 소설의 분위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전이었다면 분명히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다.


나는 십 대에 이 책을 읽고 <변신>이라는 소설 속 세상을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 내가 상상한 잠자의 집과 가족들, 잠자의 얼굴, 그리고 변해버린 잠자의 몸뚱이도. 나는 그 벌레를 딱정벌레도, 바퀴도 아닌, 세상에 없는 나만의 벌레로 만들어 내 머릿속에서 이십 년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해왔다.


그런 그 세계가 그림을 본 순간 깨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소설을 읽고 나서 감동에 휩싸였는데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실망하는 것처럼.


나는 결국 글자만 가득한 <변신>을 골랐다. 그림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소설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이렇게 환상적인 소설은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양면


삽화라는 것은 있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는, 때로는 책에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상을 방해할 수도 있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림책은 어떻게 읽느냐고 나에게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때는 글쎄,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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