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함께 하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 맘껏 애정 표현하며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내가 해주고 싶은 요리를 알콩달콩 함께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맥주 한잔하고 싶을 때 늦은 밤 집에서 함께 야식 먹으며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여행 가거나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을 때 당연하게 같이 갈래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이,퇴근하고 돌아오면 함께 시간을 보낼 가족이 있다는 것이, 자녀가 성장하며 함께 성장해갈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자녀가 커가며 삶의 변화가 있는 것이, 가족 안에서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부러운데...
기혼은 아무것도 매어있지 않은 나의 자유로운 일상을 너무도 부러워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까지 간 운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가지려고 나의 유일하게 남은 자유까지 부러워하는 것인가. 판도라의 상자 안에 있는 마지막 희망까지 욕심내는 느낌이다.나는 내 자유로운 일상을 잘 조율해서 양보하고 싶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조차 없는 상황인데!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세요! 누군가는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어서 포기해야 하는 미래입니다!'라고 몇 번이나 외치고 싶어 진다.
알고 있다. 왜 기혼자들이 미혼을 부러워하는지-
특히나 대한민국의 여성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남편 + 시댁 + 사회적인 풍습'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거기다 육아에 가사노동까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결혼하는 순간 여자에게 더 많은 희생과 책임이 부과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현실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남자는 주로 경제적 가장이라는 무게의 희생이겠지만, 맞벌이가 많은 요즈음은 무게가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엄마 시대에 힘들게 경험하는 것을 보며 자라왔고, 우리 시대의 내 친구들도 겪는 현실이다. 도련님, 형님과 같은 불평등한 호칭에서부터 느낌이 온다. '며느리니까! 엄마니까! 아내니까!'라는 역할 내에 따라오는 암묵적이고 묵직한 부담감.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크게 펼쳐지는 시공간이 "명절"인 것이다. 명절이 지나가면 분노에 차서 속 뒤집어지는 이야기들로 들썩들썩 거린다.
평상시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현실이 그려진다. 돈 때문이든 시간 때문이든, 결혼하게 된다면 내가 포기해야 될 자유는 분명하다. 미혼의자유로운 만남과 취미 생활은 내려놓고, 뒤돌아서면 밥하고 빨래하는 지겨운 일상이 따라붙는다. 분명 두 명이 만나서 하는 결혼이니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더 줄어들거나, 1+1=2 라도 되어야 할 텐데. 체감상 일은 더더욱 늘어나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혼은 안정적으로 보이는 기혼을 부러워하고, 또 기혼이 되면 그 안정적인 현실이 절대 안정적인 것이 아님을 알기에 미혼을 부러워한다. 결혼은 결국 현실이니까.
그러니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알고서도 결혼에 뛰어드는 아내를 남편은 정말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우선시하여 나의 가치를 사회 관습 속 층층시하의 막내로 시작하겠다는 용기를 낸 '새댁'들에게 감사하기를.
뭐 요새 2030이나 MZ세대는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내세우는 편인 거 같긴 하다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사회적 관습을 이겨내려는 선구자는 외롭고 강해야 하는 길인 듯하다.
이번 명절, 나는 총 4가족 16명이 모인 큰댁을 다녀왔다. 이건 결혼을 하지 않은 큰댁 왕언니, 왕오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어릴 때부터 30년 넘게 변함없이 이어지는 문화이다.
전 부치고 차례 지내는 형식이 남아있는 유교 스타일의 큰댁. 나는 결혼했으면 했을 명절 일이 아쉬워서 '여기서라도 맘껏 하자!'라는 마음에 다른 때보다 더 엄마들의 일에 손을 도왔다.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또 뭐 하면 될까요?"
일이 엄청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계속 뭔가를 할 수 있는 일만큼은 된다. 전 반죽 때려서 부드럽게 만들기, 프라이팬 옆에 있으며 안 예쁜 전 조금씩 먹기, 대가족이 쓸 그릇 닦기, 제기용품 닦기, 음식 담은 그릇 나르기..
엄청 많지는 않지만 나름 전통을 지키는 중
유교 문화 집입니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회 세가지 나물..!! ㅋㅋ
40년 간이나 제사를 지내는 아버지들이 대단하시다. 나는 친척들이랑 노는 게 좋아서 열심히 참석하지만, 유교 문화답게 '여자'인 나는 언제 빠져도 괜찮은 깍두기 같은 존재다. 참 신기한 유교 문화.
그렇게 나의 1박 2일의 짧은 명절이 끝이 났다. 익숙하게 습관처럼 참여하는 설날의 하루. 즐겁게 노는 가족의 전통이라 생각하기엔 엄마들의 노고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명절의 양면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