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타인을, 나를 인정하다
항상 어떤 공부든 그렇다. 배우면 그 세계를 알게 된다.
마치 매트릭스 영화의 빨갛고 파란 약처럼.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면 그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는 그런 즐거움이 좋아서 다양한 것을 배우는 게 좋았다.
매년마다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되는데 2023년은 '사주'의 해였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에게 관심이 적었다. 10대 때부터 학업 경쟁을 하며 친구들은 경쟁자라는 의식이 있어서 그랬을까, 아님 온갖 수행평가와 시험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 버거워서 그랬을까 타인과 세상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연예인 등 누군가를 좋아하며 덕질하는 학창 시절이라는데 나는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 머릿속은 항상 공부로 가득 차 있었다.
시험 문제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되는 두려움과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책 속에서 여유 없이 세상을 달렸다. 그런 모습들은 학업에 매진은 할 수 있어도, 세상을 보는 눈과 사회성을 키우기에 조금 부족했을 거다.
세상과 부딪히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나 자신은 조금씩 깎여갔다. 단체 생활에서의 나, 한 사람의 연인으로서의 내가 많이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나는 한계를 느꼈고 그제야 타인과 세상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썰미 좋게 남을 관찰하며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다. 앉아서 공부하며 익히는 게 쉽던 내게 사주는 세상을 보는 꽤 유용한 틀이었다. 사주가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큰 대전제 속에서 사람을 보았다. 나 자신, 가족친척, 친구들, 연예인.. 어떤 성향이 있어 그렇게 행동을 했고, 어떤 대운이 있어 힘들었는지 파악하니 공감이 되었다. 그러자 한 사람 두 사람.. 사람들의 삶이 눈에 보였다. 눈에 보이니 애정이 갔다.
사주는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수용인지 체념인지 자기 합리화인지 모르겠다. 다만 '내게 주어진 기운이라도 잘 가꾸는게 성공의 지름길이다.' 생각하니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주를 공부하며 비교가 많이 줄었다. 나는 나의 길을, 타인은 타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타인의 행동으로 영향받는 내 마음속 감정의 파도의 폭을 줄일 수 있었다. 누구나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니 타인에게도 여유로워졌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해본다. 나는 생각보다 나를 몰랐던 것 같다.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기운을 보며 인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계'의 특징 중 하나는 물이라 유연함이 있고 처세술이 강하단다. 음.. 인간관계의 맺고 끊음이 약한 것 같은데 유연함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전 남자친구, 전 팀장님, 오랜 친구 등 지나간 인연을 아쉬워하는 나는, 기회를 보며 철새처럼 떠나기보다는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 같은데 처세술이 부족한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맞냐 안 맞냐'를 파악하면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 '나 자신은 누구인가, 장단점은 뭐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시기의 나는 어땠는가' 등등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은 인생을 살며 꼭 필요한 시간들인데, 나는 사주를 공부하며 압축적이고 폭발적으로 매진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나를 알게 되면 나를 다독일 수 있다. 사람은 성장하는 존재이니까, 나를 믿어주면서 부족한 부분을 변화하려는 노력이 조금씩 더 나은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만드는 것 같다.
그러자 어느 순간 나의 못난 부분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람은 다 장단점이 있는데, 이전의 나는 완벽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왜 이거밖에 못하지, 누구처럼 돈을 더 벌지 못하지, 센스 없이 처세를 못하지.' 분명 나의 장점도 많을 텐데 타인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자책했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힘든 시기에 나 자신이 무너지게 되니 모래알 같이 바스러지는 내 얕은 밑바닥을 보았다. 그 바닥을 다시 단단히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고 사주가 도움이 되었다.
'나 자신이 겨울(해자축) + 대운 겨울+ 세운 겨울'처럼 트리플로 힘든 시기를 지나게 될 때가 보인다. 그럴 때는 인생의 큰 일을 피하는 게 좋다. 직업, 이직, 연애, 궁합, 이사 등등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참고할 지표가 생겼다.
희로애락 생로병사에 조금은 초연해진다. 아홉수, 삼재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더라. 이전의 나는 '그런 게 어딨어' 하고 밀어붙였다면 겪어보니 피하고 싶다. 걱정되지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어차피 닥칠 빗속에서 웃는 법을 배워본다.
건강을 좀 더 자세히 챙기게 되었다. 날 때부터 건강이 약한 사주가 있다면 보험을 좀 들어놓는 것도 좋다. 수술 수가 많은 사주는 눈썹 문신처럼 칼을 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내가 많이 쓰는 기운은 빨리 닳을 수 있으니 건강 검진을 더 잘 보게 된다. 부모님의 건강 운을 신경 쓰며 잔소리가 늘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건강은 최악의 수를 대비해서 준비하고 싶다. 좀 억울하긴 하지만 사주로 보았을 때, 인생은 운빨이 맞는 것 같다.
사주는 변하지 않는다. '양날의 검' 같은 이 지표는 나를 답답하게 하기도 한다. 매트릭스의 진실을 보는 빨간 약처럼 느꼈지만, 결과적으로 사주 공부는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오히려 먼저 알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주는 끊임없이 부족한 나를 재촉하며 삶의 직구만을 던져왔던 내게 변화구를 던지듯이 세상엔 여러 삶의 형태가 있고 때론 멈추거나 쉬어갈 때도 필요하다는 의미를 던져주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