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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Feb 29. 2024

영어 못해도 외국인 친구는 생겨요

영어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해외여행을 추천하면 꼭 따라오는 이야기가 있다.

"나 영어 못하는데? 겁나서 혼자 못가~"


그럴 때마다 고구마 먹은 듯 답답 해진다. 아니.. 나도 잘 못한다니까? 한번 용기 내봐도 좋을텐데..


우선 영어를 못한다는 정의를 다시 내려본다.

학교에서 배우는 정규 과목 영어. 문법과 단어는 머릿속에 꽉꽉 채워 넣었지만, 막상 회화를 하면 말이 안 나온다. 그들이 하는 단어와 대화 내용은 알아듣지만, 정작 나는 화려하고 알찬 문장은 못 만들어낸다.

If I were a bird~ 열심히 외운 가정법에 were 이 온다는 건 알아도, '내가 만약 새라면~' 영어 문장을 할 일이 없으니 잊어버리고 만다. 


전형적인 한국식 교육이지만, 여행 중의 나는 거침없이 외국인들과 이야기하곤 했다.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대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 사는데 똑같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내게 영어는 외국어이듯,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도 외국어이다. 솔직히 나보다 더 못하는 외국인도 많더라. 유럽은 비슷한 어순과 알파벳으로 좀 더 배우기 쉽겠지만, 그들에게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게 크게 흠은 아니다. (아무리 영어를 배워도 재미가 없고 잘 안되는데 어떡해 ㅠㅠ)


그래서 나는 일본어 독일어 초급 (숫자세기, 단어 읽기 등), 한국식 영어를 장착하고, 여행 도시의 인사말 (감사합니다. 얼마예요? 비싸요!)만 급히 외우는 수준으로 100여 개 도시를 신나게 돌아다녔다.   




유럽에서 묵는 게스트하우스.

아침 식사를 먹으러 일찍 일어나 주섬주섬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간다.


@픽사베이. 보통은 뷔페식 간단한 아침들이 급식처럼 나를 반긴다.


혼자서 옴뇸뇸 와구와구 먹고 있다가 지나가는 다른 배식 친구들과 눈이 마주친다. Hello~ Halo~

유럽은 가벼운 인사를 참 잘한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지나치고, 나도 아침 인사를 한다.


그러다가 식사를 같이 앉아 먹기도 하고, 가볍게 정보나 얻어볼까 싶다.

"넌 오늘 어디로 가니?"

그렇게 대화는 시작된다. 맛난 음식점을 추천받기도 하고, 기차 정보를 얻기도 한다.

왜 여행을 왔는지, 코스를 어떻게 정했는지, 어디로 갈 건지- 입담이 터져 즐겁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더듬더듬 단어 위주의 대화로 영어를 하다 보면, 조금씩 내 내면에 숨겨져 있던 영어 문장들이 하나의 생생한 문장이 되어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그렇게 영어가 조금씩 늘어간다.


나는 동아시아 3국의 또래 친구들과 동행을 잘하곤 했다. 비슷한 생김새에 유교 문화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럴까. 덧니가 귀여운 일본 친구들이나 목소리가 우렁찬 중국 친구들과 대화하고 있으면, 머리랑 눈동자가 검다는 공통점 외에는 차이들이 문득문득 느껴져 재미있다.





오스트리아 빈 여행 중, 유명한 카페에서 자허토르테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분위기가 있어 보이는 곳에 하필이면 입고 간 옷이 편안한 후드티에 PARTY라고 쓰여있어서 민망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로 '축제' 쓰인 옷을 입은 거랑 비슷하달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굴하지 않고 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옆 자리에는 내 또래의 귀여운 일본인 여대생 둘이 "쓰고이~!" 찰칵찰칵 거리며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pixabay. 오스트리아 빈의 명물인 자허토르테 디저트이다. 진한 초콜릿 케이크랄까.


"아노~ 샤진?" 제스처를 담아 카메라 주면 둘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본다. 리액션이 좋은 일본인들 답게 "하이 하이! 아리가또~". 까르르 발랄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한 뒤 나도 찍어주겠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나의 큰 그림이다. 내 사진을 남기려면 먼저 찍어줘야지. ㅋㅋ


"와타시와 칸코쿠진데스! (나는 한국인이야!)" 그렇게 우린 반나절의 친구가 되었다. 일본어 단어를 몇 개 아는 걸로도, 충분히 친구가 된다. 빈의 멋진 동상들을 보며 감탄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보며 사진도 함께 찍고, 석양을 보며 저녁이 되었다. 아쉽게도 미리 예약한 공연이 있어 헤어지게 되었다. (음악의 고장 빈이다. 음악회는 필수!) 잠깐의 우정이 아쉬워서 눈물을 글썽이던 고마운 모습이 내 뇌리에 남아있다.

  

특히 나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기 전에 크로아티아를 다녀왔는데, 일본에서는 대단한 인기라 일본인들이 정말 많았다. 몇 년 뒤에 '꽃할배'로 유명세를 타서 한국 사람들이 여행 가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정말 우리나라는 일본의 몇 년 뒤를 따르는 걸까!




유럽과 동남아의 처음 가본 도시들. 아무리 길을 잘 찾는 나라도 헤맬 때가 많다.

"이상하다? 이쯤 되면 이 장소가 나와야 하는데?"

한국인 24살의 여학생이 지나가는 사람 중 여유롭고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보고 길을 묻는다.

"익.. 익스큐즈미? where is the bus terminal? 버스 터미널 어디로 가야 해요?"

그마저도 영어 안 통하는 곳은 지도로 체크한 곳을 보여주거나 "버스! 부스! 터미널! 떼르미니!" 외쳐본다.

단어만 이야기해도 상대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장소를 친절히 알려준단 말이지.


@pixabay. 요렇게 책을 들고 헤매고 있다가 길을 물어보곤 했다.


한 번은 이탈리아 남부 지방을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외모는 훨씬 많아 보이지만 아마도) 비슷한 나이대 같은 미국인 남자를 만났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겠지만- 나란히 서서 같은 풍경을 즐기고 있으니 말을 걸어온다. "Hi, Where are you from? South? North?" 꼭 남한인지 북한인지 묻더라. ㅋㅋ 말 걸으니 대답해 줘야지~. 그렇게 말을 하며 함께 걷게 되었다.


아니 근데 너무 말이 빠른 거다. 둘 다 외국어로서 영어는 서로 배려라도 하는데, 원어민 속도는 못 따라가겠다. 지역 명물인 포지타노 레몬 사탕을 사려나보다. 나랑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점원 아가씨도 영어를 잘한다. 둘이 뭐라 쏼라 하며 대화를 하는데, 뭐라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영어 잘 못하는 게 아쉽다. ㅋㅋ 이 남자 나랑 구경 좀 하고 거리를 걷더니만, 나한테 묻는다. "나 로마로 올라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충격이다. 내가 쉬워 보였나? 아님 문화적 차이인가? 아니 꼴랑 한 시간 같이 돌아다니다가 내가 왜 그쪽 여행을 따라갑니까 ㅋㅋㅋ 노노 바이바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플러팅은 유럽 여행에서 혼자 다니다 보면 정말 많다.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는 나이 든 할아버지까지 아주 그냥 생활인 듯하다. 순박한 시골마을에서 '벨라~(아가씨~)' 하며 눈 윙크를 한다. 길을 물어보니 내 캐리어를 끌어주며 저 앞 500m 숙소까지 굳이 안내해 준다네? 과한 친절인 것 같은데. 뭐, 없어지진 않겠지?불안한 마음 반, 호의를 거절하기엔 민망한 마음 반이다. "음, 그라시아스~!" '감사합니다'는 만인 공통의 언어다. 다행히 별일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고마우니 함박웃음을 지어 호의에 대답한다.


참 여행하면 별일 다 있다. 외국인들의 호의는 또 색다른 느낌이다. 글로벌 시대의 일원이 된 느낌이랄까. 조금씩의 호의에 감사함을 표하고자 나는 다이소 1000원짜리 한국 전통 스티커를 가방에 들고 다니다가 그날의 잠깐 만난 고마운 외국인에게 주곤 했다. 가끔 전혀 다른 문화의 외국인들과 너무 다른 상식으로 놀랄 때가 있기도 했다. 도미토리 남녀 혼성 숙소에서 상체 탈의로 돌아다닌다던가, 꼭두새벽에 코란 절을 하고 있다던가. (물론 매우 점잖고 좋으신 분들도 많다.)  나라의 힘든 근무 여건을 나누며 생생한 문화 차이를 배워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의 고정관념은 깨져갔다.


그렇게 만나 페이스북 친구가 되곤 했다. 조금씩 나의 해외 친구들이 늘어났다. 초반에 '좋아요'를 서로 눌러주다가, 점점 멀어지게 되더라. 지구촌 어딘가에서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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