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었다. 6년 동안 나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그가 없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이제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궁상맞게 혼자서 어렴풋한 쌉쌀한 슬픔과 공허함을 느끼며 하루를 보낼 수 없었다.
23~25일의 휴일. 심심할 때마다 자주 참여하곤 하던 '소모임' 어플. 어플의 힘을 빌려야 했다. 나처럼 심심한 솔로들이 많았는지 크리스마스에 모임이 꽤 있었다. 그중 나는 하나를 고르기로 했다.
재미난 활동들이 많았다. 강남에서 맛있는 걸 먹어볼까? 영화를 보고 노래방을 갈까? 전시회를 다녀와볼까? 잠깐의 고민 끝에 마음이 가는 것을 골랐다. 위치가 가까워서 심적 부담이 없고, 누군가의 할인 티켓의 가성비로 영화를 다 같이 볼 수 있을 것이고, 마침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싶었는데 잘되었다! 거기다가 선물도 교환한다고? 아 딱이다.밤을 새보기로 했다. 인생 살며 밤을 별로 새보지 않은 나였는데, 나만의 도전이라면 도전이었다.
2030 솔로들을 위한 다양한 일정. 영화관과 노래방의 크리스마스 트리들. 신난다!
23일 저녁 8시. 크리스마스의 연휴가 시작되었다.
나는 보통 정각에 도착하도록 약속을 가는 편인데, 그러면 '빨리 오는 사람'이 되곤 한다.
위아래 10살이 차이나는 86~95년생까지 무려 15명의 사람들이 모여, 피자와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잠깐의 '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어색한 정적 타임.
하지만 이런 식의 만남에 익숙한 20-30대 사람들은 곧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MBTI의 E 들만 가득가득할 것 같지만, 의외로 I 들도 많다.
요즘같이 추운 날, 집순이 집돌이의 이불속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용자들이다.
요즘의 자기소개 트렌드는 "이름, 사는 곳, 나이, 직업, MBTI, 이상형"의 순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 만나자마자 할 수 있는 가볍고도 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주제들. 내가 속한 모임만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나를 규정하는 여러가지 지표 중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라 생각한다.
특히 MBTI 가 유행하면서, 성격 특성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달까. '무슨 혈액형이세요?' 보다는 낫다.
그렇게 우리 15명은 4명씩 테이블을 나눠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블로그와 유튜브, 인스타까지 열심히 하시는 분이 있어서 그분의 이야기를 주로 듣게 되었다. 요즘의 트렌드가 확실히 회사일 이외 뭐라도 더 해야 하는 푸쉬푸쉬 분위기인 것 같긴 하다.
다음으로 영화를 보러 간다. 뮤지컬 영화인 영웅! 나는 뮤지컬 스타일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노래로부터 전해져 오는 에너지와 깊이로 감명을 잘 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15명은 4명씩 앞뒤로 주루루 앉아서 영화에 빠져들었다. 끝나고 자신만의 간단한 감상평을 듣는 것도 묘미! 나의 왼쪽 분은 코를 골며 주무시고, 오른쪽 분은 3번은 더 봐야겠다고 감명 깊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마치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한 기분!
밤 12시. 24일의 새벽을 맞이하였다. 마지막 일정은 무려 999분의 무한 노래방! 처음 시작은 기대하던 만원 이하의 간단한 선물 증정식이다. 선물은 노래 1 소절씩 부른 점수 순위대로 고르기로 하였다. 한 사람씩 1절만 불러도 20분은 후딱 지나간다. 나의 선곡은 21학번의 '스티커사진'. 요즘 상콤 발랄한 노래가 좋다.
두구두구~ 충격적 이게도 내가 100점이 나왔다!! 1등!!!기교 있게 노래를잘 부르는 사람들은 85점대. ㅋㅋㅋ 정직한 스타일의 노래를 부른 나는 노래방이 원하는 인재였나 보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임팩트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뿌듯하다. 그렇게 나는 핫팩, 바디 클랜저, 상품권, 마스크팩, 눈오리 등 다양한 상품들이 있는 가운데 조그맣게 반짝 빛나는 목걸이를 손에 얻었다. 우연찮게 나의 이니셜인 H 가 쓰여있는 것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선물을 샀던 마니또는 H르메스처럼 마음이라도 느끼라고 샀다고 한다.
새벽 노래방에서의 열창.
선물 증정식과 새벽의 움직임.
새벽 4시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밤새는 것이 꽤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술 반입 금지로 건전하게 간단한 음료와 물을 마시며 순간을 즐겼다. 그렇게 새벽 내음을 느끼며 첫차를 타고 집을 돌아와서 바로 잠이 들었다.
오전 내내 푹 쉬고 기력을 회복한 24일은크리스마스 이브! 혼자인나는본가에 들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저녁은 무한 리필 월남쌈이다!
배부르게 신나게 먹었다. 우리 집은 애주가들이 많아 가벼운 술이 항상 함께 하는 것 같다.
가족끼리 함께하는 오붓함.
25일이 되었다.
아직 크리스마스는 끝나지 않았다!!
친구가 놀러 오기로 한 것이다. 홈파티를 준비하는 것은 나의 즐거움~
크리스마스를 잘 느낄 수 있게, 산타 카레와 루돌프 바나나 음식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시즌 때마다 내놓는 각종 아이템의 힘을 빌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세팅해 본다.
홈파티 준비중~
친구 오는 시간에 맞춰 후다다닥 음식을 해본다. 음식이 차가워지지 않게 적절한 시간에 맞춰 준비하는 것도 은근히 쉽지 않다. 그래도 설레고 기뻐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좋다!
산타 카레와 루돌프 바나나.
역시나 친구는 즐거워해 주었고, 친구를 보며 나도 함께 즐거워진다. 함께 보내는 순간의 기쁨. Seize the moment!
끝없이 먹는 야식과 아침식사.
부니엘의 크리스마스는 가득 찬 일정으로 끝이 났다. 역시 일정은 만들기 나름이다. 허전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아 만들었던 일정들이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순간을 맘껏 즐겼으면 되었다. 이 순간들이 추억이 되어 오늘의 나를 채워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