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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Oct 24. 2022

내가 미운 날

어제는 내가 미운 날이었다. 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유치하고 구려서 낯뜨거운 .  나는 이렇게밖에   없는가 하고 곱씹다 하루가 갔다.


운동을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잘 되지 않는 동작을 시키고 남은 힘을 다 쥐어짰는데 한 세트를 더 하자는 말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힘을 다 썼는데? 하지만 이런 말을 바로 하지는 않는다. 투덜거리는 학생이기 싫기 때문이다. 피티 선생님과는 상당히 잘 맞아 8개월 정도 함께 하고 있는데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그가 모를 리 없다. 짜증난 표정까지 감추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 세트를 더 하고 나서 큰 마음을 먹고 말했다. "한 세트를 더하니까 잘 안돼요."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을 보고 짜증낼 수는 없으니까- 말하자 그는 "힘이 점점 딸리니까 당연하죠."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웃는 모습에 또 속이 뒤틀린다. 아니, 나는 짜증나 죽겠는데 웃어? 놀리는거야 뭐야. 당연히 말하지 않는 속마음이다. 이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을까봐 운동이 끝날 즈음에 슬쩍 말을 건넨다. "동작이 안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나요." "안 하던걸 하니까요.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더 높은 수준의 새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머리나 몸이 안 따라오는 거예요. 그렇지만 반복하면 돼요. 괜찮아요." 나는 안 괜찮아요!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몇 번이나 들은 말인데도 그 말을 들으면 납득하고 만다. "처음은 늘 어렵네요." 그에게 하는 대답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애쓰고 나면 내가 미워진다. 이런 일로 선생님한테 왜 짜증을 내는거야. 미성숙해. 찌질하고 구린 마음은 자주 치솟는다. 외모가 예쁘거나 커리어에서 잘되는 친구를 보면 질투가 나고, 딱히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으면서 괜찮다고 생각했던 지인에게 연인이 생기면 말이 뾰족하게 나간다. 이해가 가지 않는 동료가 빠진 모임에서는 그 동료의 뒷이야기를 한다. 그렇구나 하고 지나치는 법은 절대 없다. 말을 얹고 정황 근거까지도 끌어온다.


얼마 전 언니가 '나르시즘이 심한 부모의 양육법'이라는 인터넷 글을 공유하며 엄마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주도권을 자신이 잡으려고 하는 것, 다른 사람이 칭찬받거나 잘되면 불편해서 티나게 자신의 덕으로 돌리는 것, 소유욕이 강한 것 등. 엄마고 자시고 그 글을 읽는 내내 낯이 뜨거웠다. 이거 나잖아. 허를 찔린 기분이다. '이런 나'를 원해서 찍는 성격검사 결과와 실제 나의 괴리를 실감한다. 사람 많은 모임에 가면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것? 외향적이라기보다 답답한 게 싫고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잖아. 불합리한 것을 보면 말하고 넘어가는 거? 나에게 불편이 올까봐서잖아. 정작 내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맞는 논리를 찾으려 애쓰잖아. 논리로 안되면 나이나 관계를 무기로 휘두르기도 하잖아. 시끄러운 모임에 안 끼는 거 맞아? 못 끼는게 아니고?


어떻게 해야 덜 찌질하게 살 수 있을까. 이따위로 살아도 괜찮을까. 언젠가 모든게 까발려지고 '지는 얼마나 잘났길래' 라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게 아닐까. 남이 뭐라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이런 모습을 싫어한다는 게 문제다. 주관을 가지고 옳은 일을 좇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한, 센스가 넘쳐서 상대를 간파하고 묘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고 싶단 말이다. 사돈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사람이 아니라 사돈이야 땅을 사든말든 내 일에 열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운동을 처음할 때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처음은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다. 처음인 것은 늘 어디선가 나타난다. 내 구린 모습도 마찬가지다. 작심삼일을 계속 하면 백일도 되고 이백일도 된다는 기적의 논리를 믿고싶다. 되고 싶은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모순에서 괴로워하며 가식적으로 살고,  그때마다 격노하며 이런 글을 쓰고 자학하더라도 무뎌지지는 않고 싶다. 에라 모르겠다 이따위로 그냥 살란다 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 성격 검사 결과지를 읽으며 '사실 나 아닌데'라고 찔리더라도 애쓰며 살고 싶다. 그러면 죽을 때쯤엔 원조는 못 되어도 제법 흉내를 잘 내는 모창 전문가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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