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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의 차이

by Jonx

상연의 회사 직원이 은중에게 찾아왔다.

"그런데 두 분 어떤 사이세요?"

은중이 말한다.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직원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은중이 다시 말한다.

"예전에는 친구였어요"


'미스틱 리버'에서 케빈 베이컨의 동료가 묻는다.

"자네, 데이브와 친구 아닌가?"

케빈이 답한다.

"예전엔 친구였지, 예전에..."


과거에는 친구 사이의 깊은 우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관중과 포숙의 '관포지교'니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을 이야기한다지만, 현대 사회에 와서는 시쳇말로 꼰대들의 스토리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친구보다는 지금 주위에 있는 주변인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어릴 적 친구들은 경조사 때나 만날 뿐, 서로 바쁘다는 등의 이유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은중과 상연은 어릴 적 친구였다. 처음에는 같은 초등학교 급우로 만나기 시작해서 대학 때 같은 동아리를 다녔고, 대학 졸업 후엔 같은 회사에 적을 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둘의 사이는 틀어졌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이가 됐다.

"나는 걔를 싫어해. 싫어하는 건 생각을 안 하니까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 나쁜 거야"라고 말하는 은중은 상연에게 입은 상처가 너무 크다.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의 차이는 증오와 저주의 차이일까.

부부생활에서도 집 안이 더러워지거나하면 치우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성격 급한 사람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우게 되는 것. 친구들 사이도 동일하다. 20대 때 친구 하나가 친구들의 생일이나 여러 행사를 도맡아 하곤 했다. 그걸 보며 답답해하던 내가 말했다.

"야, 살살해. 다른 애들은 아무도 너 안 챙기는데 너는 뭘 그렇게 챙기냐?"

그때 친구는 "나라도 챙겨야지"하며 당연시 여겼지만, 지금 그 친구들 중 몇몇은 연락도 안되고 만나지도 않는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은중과 상연 사이도 비슷해 보인다. 애정과 애증이 얽히고설킨 복잡 미묘한 관계. 말이나 글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녀들만의 역사가 자리한다.

드라마를 보던 중간에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인해 오해하고 서러워하던 청춘들. 찾아보니 '은중과 상연'의 연출자 전작이 '사랑의 이해'였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이해 폭이 넓다는 게 느껴졌다.

넷플릭스로 오랜만에 몰아보기를 시도한 드라마 '은중과 상연'. 우리들 젊은 날의 초상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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