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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Aug 30. 2020

아내와 코끼리

언제 어디서나 입조심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야'라는 말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아내는, 아이들 말에 의하면 늘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며 인류 역사상 기록에 남을만한 다이어트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다. 자신이 산후 후유증으로 인해 살이 찌기는 했지만, 팔다리는 가늘다고 믿으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살이 찌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굳은 심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이들과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가족 뷔페식당인데, 고기를 먹지 못하는 아내 때문에 우리 가족 외식은 고깃집으로 향하지 못하는 게 일상이다. 참고로 처가 식구들은 장인, 장모님은 물론 처남들과 처제들까지 고기를 먹지 못한다. 구운 고기, 삶은 고기, 튀긴 고기 등 고기류를 전혀 먹지 못하는데, 고기 굽는 냄새 조차 싫어한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들은 생선회를 먹으면 되겠네라고 말하지만, 생선회는 비린내가 난다고 해서 처가 식구들의 혐오 식품 중 하나다.


반면 아이들과 나는 육류를 좋아해서, 온갖 구운 고기, 삶은 고기, 육회 등을 접시에 담아와 먹고 있는데 역시나 열혈 다이어트 중인 아내는 메뉴에 있는 채소라는 채소는 다 끌어모아 세 접시째 먹고 있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빵과 함께.


이를 지켜보던 우리 집안의 독설가 둘째가 한 마디 한다.


"엄마, 채소라고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니에요?"


이때, 참았어야 했다. 내 안에 내재된 모든 울분과 억압에 대한 표출을 막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내 입에선 내 안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냅둬라. 코끼리도 하루에 풀만 50kg 먹는덴다."


접시에 집중하던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우편함에 온 성적표를 꺼내 접어서 주머니에 넣다가 엄마와 마주친 순간이 기억났다.

커서도 담배는 안 피울 거라고 큰 소리 떵떵 치곤 했던 내가, 대학교 때 신발끈 묶으려고 앉았다가 담배와 라이터가 떨어지던 찰나를 지켜보시던 모친이 떠올랐다.


아내는 나지막이 물었다.


"뭐라고?"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질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못 들었구나.

아내는 본인이 어떤 것에 집중할 때면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한다.

이를 간파한 내가 말했다.


"아냐, 애들이 여기 음식이 맛있대. 당신도 많이 먹어."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온갖 종교시설에서 기도한 보람을 찾는 순간이었다.

아니면, 불교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108배 올렸던 효험을 본 것일까.


수박씨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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