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좀비 소개글
“나는 닭도 아니고, 닭고기도 아니야.”
어느 날, 초조가 비끗에게 말했다. 별 다른 설명은 없었는데 비끗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마 초조와 비끗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었더라면 누구라도 그 말의 뜻을 어렵지 않게 알아 들었을 것이다.
초조와 비끗은 지금은 회사원이 됐고, 그전에는 대학원생이었으며, 또 그전에는 예술대 학생이었다. 예술대는 닭들의 천국이었다. 그곳에서는 온갖 닭들이 자신들의 알을 낳으며 존재 가치를 뽐냈다. 어떤 닭은 음악으로, 어떤 닭은 그림으로, 어떤 닭은 연극으로 알을 낳았다. 그러다 졸업할 시즌이 되면 대부분의 닭들이 털이 뽑혀 닭고기가 될 준비를 했다. 소수의 닭들만이 계속해서 알을 낳으며 살아갔고, 나머지는 자신의 쓸모를 사회에 증명하기 위해 닭고기라는 자원이 되곤 했다. 자원이 된 닭고기들은 자신들을 양분으로 하여 다른 이들을 키워갔다. 그것 역시 멋진 일이겠지만, 아무래도 살고 싶었던 초조와 비끗은 닭고기가 되는 운명을 유예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결국에는 회사로 걸어 들어갔지만 말이다.
그렇다, 걸어 들어갔다. 닭고기는 걸어 들어갈 수 없을 텐데, 어쩐지 초조와 비끗은 닭고기의 형상을 하고도 닭처럼 살아 있었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부류가 회사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자원이 된다. 초조와 비끗이 닭이 아닌 소였다면 살아서 밭을 갈 수도 있겠지만, 알을 낳지 않는 닭이 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고기가 되는 수밖에 없다. 살아서 목을 흔들며 누구의 말 따위도 듣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대지를 쫄 뿐인 닭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먹을 수 있는 고기라도 되어야 양분이 된다.
초조와 비끗은 사회에 발붙이기 위해 닭고기 행세를 하며 회사에 들어갔지만,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자꾸만 목을 흔들었고, 대지를 쪼았고, 가끔은 알을 낳기 위해 애썼다. 회사에서는 그런 행위들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면 정말로 닭고기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점점 ‘닭도 아니고, 닭고기도 아닌’ 것이 되어 갔다.
그런 초조와 비끗을 우리 자신은 ‘치킨 좀비’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