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짐 프롤로그
"자, 이제 미끄러져 봐. 앨리스의 토끼굴로."
초조가 말했다.
"사실 방금도 미끄러져서 엉덩이가 젖었어."
비끗이 엉덩이를 내밀었다.
저 멀리 동산의 끝에 오래된 나무의 굵은 뿌리 사이로 작은 굴이 보였다. 둘은 다리에 힘을 풀고 털이 듬성듬성한 닭날개를 활짝 펴 지면의 경사에 몸을 맡겼다.
이래도 되나, 이럴 수밖에, 그래 이거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고 말하는 세상을 잘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리를 '비끗'했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초조'해한다.
그런데 사실은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고 똑바로 걷기 위해 애쓰지만 사실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다 오늘 여기에서 생긴 대로 살고 있다는 것. 어제는 빗맞을 줄 알았는데 골인을 했고, 오늘은 골인을 해야만 하는데 헛발질을 하면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렇게 찌질하고 짜치는 뒷면을 앞면으로 돌려, 미끄러짐에 대한 어떤 주목과 발견, 생각과 감각에 관한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불시에 어긋나 버리는 상황 때문에 머리털을 쥐어뜯으면서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신박한 상황에 입꼬리를 옴싹이면서, 두 마리 치킨 좀비가 미끄러짐으로써 당도할 수 있는 앨리스의 토끼굴을 향해 날개를 편다.
치킨좀비의 미끄러짐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발행됩니다.
미끄러짐이 일상인 비끗과 미끄러질까봐 늘 불안한 초조가 교대로 미끄러짐에 대한 에세이를 한 편씩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