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끝인 줄 알았는데 시작?

최종 면접부터 추가 합격까지 다사다난한 시작

by 시크팍

끝인 줄 알았는데 시작이었다.

종합편성채널 방송기자로 합격한 것은 올해 봄이었다.


최종면접은 조금 난감한 유형이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한 개별질문은 전혀 없었고 시사 이슈에 대해 찬반 입장을 응시자들이 돌아가며 답변해야 했다. 면접관 3명이 돌아가며 질문을 했고 답변 순서도 면접관이 정해줬다.


기자를 준비하게 되면서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는데 항상 누구나 생각할 만한 답변은 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처음에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정반대로 글을 쓰려다 보니 근거도 부족하고 글이 엉망이었다. 그래도 계속 연습하니 점점 체화됐고 이 면접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빛을 발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4명의 지원자가 함께 들어갔는데 지원자들 모두 처음 내가 생각한 답변들을 쏟아냈다. (4명 중 3명이 최종 합격해 동기가 되었다.) 글쓰기를 연습했던 것처럼 다른 지원자와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답변을 했다. 마지막 면접관은 지원자 3명에게 모두 질문한 이후 나에게 물었다.


"000 씨도 같은 생각인가요?"

같은 생각이라면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아니라고 답변했고 반대를 주장했던 다른 지원자들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답변을 마쳤다. 면접장을 나온 뒤 합격을 확신했다.


5월 23일,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떨어진다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제는 기자를 준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이기에 상실감도 컸다. 다니던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제는 정착해서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당시 채용을 하고 있던 타사의 최종 합격 발표가 5월 26일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추가합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26일이 되어도 27일이 오후가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추가합격에 대한 기대도 접고 퇴근하던 저녁 6시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추가합격이었다. 전 날 최종합격자 1명이 입사를 포기했고 예비 1순위 었던 내가 추가합격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대하고 꿈꿔왔던 방송기자 최종 합격이었지만 얼떨떨하고 실감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에 최종 합격 안내를 받았고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이었기에 재직하던 회사에 인수인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 정도 동기들보다 늦게 입사하기로 했고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 팀장님이 퇴근하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어 회사로 돌아갔다.


6시가 넘은 시간이 회사에 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팀장님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당시 퇴근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었다.) 팀장님께 상황 설명을 해드리고 퇴사 의사를 밝혔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합격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퇴사 절차를 밟고 인수인계도 진행해야 했기에 일단 팀장님을 찾아갔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손발이 너무 떨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당시 스쿠터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는데 운전을 못할 것 같아 흡연장으로 향했다. 손이 떨려 담배 불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잠시 앉아 안정을 찾은 뒤에야 가족과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금요일 저녁이라 집으로 돌아갔지만 소식을 들은 친구가 저녁을 먹자며 사당역으로 불러냈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 잔 했는데 친척과 친구들에게 전화 세례를 받았다. 계속 전화를 받으러 나가느라 정착 축하하러 나와준 친구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돌아갈 차편이 남아 있었지만 너무 들뜬 기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걷는 편을 택했다.


주말이 지난 뒤 월요일, 출근해 회의에 들어갔다. 팀장님은 나의 이직을 팀 내에서 공식화했다. 합격 당일 팀장님 면담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야근을 하던 선생님께 합격 소식을 알려 이미 팀원들은 퇴사 소식을 알고 있기는 했었다. 동고동락하던 팀원들은 모두 축하해줬다. 과장님 한 분은 처음부터 이 조직에 오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것이 대단하다며 축하해주셨다. 이직 준비 사실을 알고 있던 선생님들은 결국 해냈다며 축하해 주셨다. 동기는 이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누구한테 하소연하느냐며 아쉬워했다.


회의와 축하 인사를 마친 뒤 곧바로 인수인계를 준비했다. 담당하고 있던 업무를 크게 3가지로 나누어 3명의 선생님들께 인계하기로 했다. 금요일까지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교수님들, 타 부서 선생님들, 거래처와 인사를 나누며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뭉클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는 부서에서 외부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행사장으로 다들 나가야 했기에 혼자 사무실을 지켰고 팀원들과 제대로 된 작별인사는 나누지 못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마지막 날에도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남아서 마지막 인수인계를 했다. 행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일부 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서야 내 인생 두 번째 직장을 떠났다.


첫 번째 직장을 경험한 뒤 입사한 곳이었기에 여러 가지 비교가 가능했었다. 조직에서도,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장점들이 보였던 곳이다. 그런 곳을 뒤로해야 했기에 부담감이 크기도 했다.


그렇게 방송기자라는 새로운 길이 인생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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