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첫 출근과 후회(2)

바이스와의 대면, 그리고 "손 내려"

by 시크팍

바이스, 기자가 되기 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출근 전 회사에서 안내받았지만 입사 후 첫 3주는 사내교육이 진행됐다. 1주 차는 기자, PD 직군에 상관없이 다 같이 공통교육을 받았다. 물론 나는 이때 전 직장에서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출근한 날부터는 직군별 교육이 진행됐다.


첫 시간에는 우리 기수 교육간사 선배가 들어왔다. 앞으로 진행될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해주고 취재 가이드북을 나눠줬다. 정말 유용한 책이었다. 마와리를 돌며 길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쓸 때 마우스 패드로 사용했다.


본격적인 첫 교육 시간이 되었다. 교육 담당은 사회부 바이스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자를 준비해왔는데 처음 들어보는 직책이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직장을 다니며 준비를 하다 보니 입사준비는 늘 혼자 했었다. 누군가와 함께한 것은 주말 스터디를 3개월 정도 참여했던 게 전부였다. 언론사 인턴 경험이 있거나 언론사 내부 환경을 잘 아는 동기들은 이미 바이스가 어떤 직책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눈치껏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교육이 끝나고 알게 되었지만 일종의 부팀장이었다. 사회부 사건팀의 팀장이 시경캡이라면 바이스는 경찰청을 출입하는 부팀장이었다.


첫 출근 첫 교육을 맡은 바이스는 나에게 충격을 안겼다. 바이스는 교육을 위해 우리가 있던 회의실에 들어올 때부터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간단히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교육을 시작했는데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좋게 말해 카리스마이지 말로만 듣던 기자들의 강압적이고 군대 같은 문화를 보여줬다. 실제로 당시 바이스는 "사건팀은 군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직원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교직원들은 팀장이나 파트장 같은 직책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연차나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를 선생님이라 호칭하며 존대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화 속에서 2년 가까이 지냈던 나는 기자들의 문화가 낯설었다.


교육간사 선배가 바이스에게 교육을 인계하고 나갈 때 나와 동기들은 교육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거나 노트를 꺼냈다. 교육을 시작하던 바이스는 외쳤다.


"손 내려"

우리는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다 걸린 학생들처럼 놀라며 굳었다. 바이스는 어차피 지금 필기를 해도 나중에 기억하지 못한다며 막았다. "손 내려" 한 마디에 우리는 압도되었고 바이스는 교육을 이어갔다. 교육을 들으면서도 중요한 내용이다 싶어 누군가 필기하려 하면 바이스는 또다시 외쳤다.


"손 내려"

나로서는 그의 교육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첫 회사에서도, 두 번째 회사에서도 입사 후 진행된 사내 교육에서는 유용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당시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업무에서 막혔을 때 문득 떠올라 교육자료와 필기를 꺼내 찾아보며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필기를 해둬야 나중에라도 찾아보며 기억을 꺼내볼 수 있을 텐데 필기 자체를 막으니 답답했다.


사실 바이스의 '손 내려'는 우리 기수가 처음이 아니었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가 회사에 있었다. 선배는 회사에서 나를 만나고 "너희도 바이스가 손 내리라고 했니?"라고 물었다. 바이스의 '손 내려'는 이 회사의 고유명사였다.(나중에 또 다른 바이스의 고유명사가 등장한다.)


바이스의 교육은 '보도정보와 기사 작성'이라는 주제였다. 회사에는 '보도정보'라는 기사작성 프로그램이 있었다. 입봉을 하고 기사를 쓰게 되며 사용법을 익혀갔지만 방송기사는 DVE, 수퍼, CG, 영상편집 등 다양한 작업이 필요하다 보니 사용법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이스는 이 보도정보 사용법에 대한 교육은 생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교육하는 것은 무리였다.


대신 바이스는 사회부 사건팀과 마와리를 돌아야 하는 경찰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줬다. 이 날 바이스가 이야기해 준 경찰 취재원과의 관계 형성 팁은 마와리를 돌며 많이 써먹기도 했었다. 기사 작성은 시간관계상 단신 작성방법에 대해서만 교육을 했다. 바이스는 단신 작성법에 대해서 만큼은 기억하게 만들어줬다.


'리드-혐의점-사건의 디테일-경찰의 워딩'

바이스가 사건기사를 단신으로 쓸 때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이렇게 알려줬다. 그리고 칠판에 적힌 구성 순서를 지웠다. 우리는 바이스가 임의로 지목하는 순서대로 돌아가며 단신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순서대로 답해야 했다. 사건기사를 리포트로 쓸 때도 이 구성대로 작성한다고 했다. 교육이 끝나고 바이스가 나간 뒤 나는 부랴부랴 기억을 되짚어 '리드-혐의점-사건의 디테일-경찰의 워딩'만을 필기해 두었다.


입사 첫날 바이스의 교육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정말 존중받으며 일해왔구나 새삼 깨달았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했을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퇴사한 전 직장이 그립기도 했다. 이 날 점심을 당시 사회부장, 사회부 차장과 함께 했었다. 지금은 사회부장이 된 차장 선배는 어떤 일을 하다 왔는지 물어보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어쩌겠나.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 번 다짐했었다. 잘 버텨보자고, 어렵게 온 길인 만큼 좋은 기자가 되어 보자고 생각했다.


바이스는 첫날 강한 인상 때문에 나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마와리를 돌면서도, 입봉 하던 날에도 바이스는 그저 무서운 존재였다. 마와리를 돌며, 취재를 하며 바이스 때문에 울었던 동기도 있었다.


하지만 겪어보니 그저 열정 넘치는 정 많은 사람이었다. 강한 인상을 남긴 첫 교육시간에도 서른셋에 수습기자로 입사한 나에게 응원을 보냈다. 본인도 직장을 다니다 들어와 동기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며 괜찮으니 '존버'하라고 말해줬다. 정치부로 부서이동을 한 뒤에도 주말에 함께 근무를 하면 내 기사를 모니터 해주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퇴사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전화를 해준 선배였다.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자 대부분의 선배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 선배는 곧바로 나에게 전화해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선배가 건넨 한 마디에 나는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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