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첫 출근과 후회(1)

세 번째 회사, 어려운 동기들이 생겼다

by 시크팍

현충일 연휴가 지나고, 드디어 기자로서 정식 출근을 했다.


사실 완전한 처음은 아니었다. 다니던 회사 인수인계 때문에 동기들보다 일주일 늦게 입사했지만 동기들이 입사하던 5월 30일 오전에 잠시 출근을 했었다. 추가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임원진 인사가 있으니 30일 오전에만 잠시 나와달라고 했다. 반차를 쓰고 출근해 처음 동기들을 만났다. 예비소집 뒤에 추가합격을 했던 터라 누가 취재기자, 촬영기자, PD 동기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옆에 앉은 동기가 말을 걸어줬고 이미 예비소집 때 만들어진 단톡방에도 초대해 줬다. (훗날 이 동기는 가장 빠른 탈출을 감행했다.)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장, 부회장, 대표 등 임원진 인사를 다녔다. 신분증 수령과 근로계약서 작성이 이어졌다. 근로계약서 작성의 묘미는 단연 임금이다. 그런데 이 임금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 회의실에서 동기들과 대기하다가 이름 순서대로 관리부 직원과 밖에 나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내가 두 번째였는데 작성을 마치고 들어가니 첫 순서였던 동기 김 모 기자가 내게 와 본인이 확인한 금액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 친구도 충격이 컸었던 것 같다.


수습기간은 6개월, 수습기간 동안 급여는 70% 지급이었다. 취재비도 수습기간에는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받는 월급은 식대와 교통비를 포함한 세전 기준으로 직전 회사 평달 월급보다 160만원이 적었다.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전에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5천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소득에 따라 소비 패턴이 맞춰져 있다 보니 당장 갚아 나갈 대출금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오전 반차였기 때문에 대표와의 점심자리를 뒤로 하고 걱정과 함께 인수인계를 위해 회사로 돌아갔다.


한창 인수인계를 하고 있을 때 동기들은 사내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런 동기들은 입사 첫 주부터 취재기자 동기 회식을 추진했다. 다행히 단톡방에 들어가 있었던 나도 초대를 받았다. 회사 인근 식당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인수인계 때문에 모임 시간에 많이 늦었다. 도착해서 보니 이미 동기들은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아직 동기들 이름도 외우지 못한 나는 동기들 얼굴과 이름을 매칭시키느라 바빴다. 짓궂은 동기들은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나에게 동기들 이름을 맞혀보라고 했다. 어색하기도 했지만 술잔을 기울이며 동기들 사이에 동화되었다. 다음날이 다니던 직장 마지막 출근 날이었는데도 2차에 3차까지 흥건하게 적셨다.


어느덧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이 되었고 당시 상도동에 살던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동기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충무로에서 택시를 잡느라 애를 먹었는데, 지나치게 택시가 잡히지 않자 나는 승부수를 띄웠다. 카카오택시로 도착지를 인천 송도로 지정했다. 호출을 누르자 곧바로 배차가 되었다.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 사실 송도가 아니라 상도동을 가려고 하는데 추가 요금을 지불할 테니 가달라고 했다. 기사님이 흔쾌히 수락해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기 전부터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던 동기는 택시 안에서도 노래를 불러댔다. 이 동기는 삼각지역 사거리에서 택시가 정차하자 갑자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집 앞에 도착한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친구가 어지간히 취했구나 생각했다.


사실 이날 동기들과의 회식은 매우 힘들었다. 대학원을 다니다 햇수로 4년의 직장생활까지 마치고 들어간 방송국이었다. 단연 동기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막내와는 8살 차이가 났다. 이제는 나이와 상관없이 막역한 사이가 되었지만 초반에는 워낙 나이 차이가 심하다 보니 동기들을 대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 노는 동기들을 보며 확실히 어린 친구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4년간 회사에서 경험한 회식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말 그대로 에너지가 넘쳤다. (그렇다 나는 꼰대이다.) 이런 동기들 사이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내 체력은 고갈됐다.


다사다난했던 퇴사절차를 마치고 현충일 연휴를 보냈다. 추가 합격을 하기 전에 사촌형이 타던 차를 인수하기로 했는데 이직 준비로 시간이 없어 연휴에 받기로 했었다. 검은색 차였고 선팅도 너무 어둡게 되어 있어서 처음 차를 인수하고 검둥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나중에 언론진흥재단 수습기자 기본교육에서 동기 막내 조 모 기자가 이름이 별로라며 '까미'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줬다. 연휴 마지막날에는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도 정장을 입고 다녔지만 이제는 넥타이가 추가됐다. 복장에 대해 특별한 지시는 없었지만 첫 출근에는 넥타이가 기본 아니겠는가. (난 역시 꼰대이다.)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왔던 방송기자로 첫 발을 내딛는 날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적당한 연봉과 정년보장 그리고 사학연금 같은 메리트가 있었던 곳, 스스로도 만족하며 다니고 있던 곳을 떠나 서른셋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맞는지 걱정이 되었다. 충격적인 연봉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드디어 첫 출근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일찌감치 일어나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벌써 세 번째 직장이지만 언제나 첫 출근을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넥타이는 답답했다. 안내받은 곳으로 출근을 했는데 관리부 대리님 한 분과 동기들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동기인 줄 알고 손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관리부 대리님이라 다시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그래도 동기들을 봤을 때 나름대로 안심이 되었다. 동기들 입사일에 와서 인사하지 않았다면, 회식자리를 가지 않았다면 더 어색하고 긴장이 됐을 텐데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동기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는 몰랐다. 바이스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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