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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팍 Oct 13. 2023

나의 수습일지 #기자는 현장에서 크는 법

일가족 극단적 선택, 현장에서 마주한 타사 기자들

7월 25일 혜화북부라인(혜북라인)으로 첫 출근을 했다. 보고하는 선배도 여러 가지 환경도 바뀌었다. 보고 양식도 바뀌었는데 혜북에서는 8시에 바로 일보를 올리지 않아도 됐다. 경찰서에서 노트북에 시간이 보이게끔 사진을 찍어서 라인방에 출근 보고만 올렸다. 그리고 20분간 일보를 정리해서 올리면 됐다.


광역 영등포라인에서는 수습 3명이 영등포, 관악, 마포라인에 각각 배치되어 각 라인에서 경찰서 4곳만 돌았다. 혜북에서는 혜화, 노원라인으로 구분하지 않고 당일에 수습끼리 같은 경찰서만 가지 않게 조율했다.


광역 혜북라인은 관할이 넓어도 너무 넓었다. 혜화, 노원라인과 더불어 경기 북부까지가 관할이었다. 경찰서를 기준으로 서울 6개(혜화, 동대문, 중랑, 노원, 강북, 도봉), 경기 12개(파주, 고양, 일산서부, 일산동부, 의정부, 동두천, 양주, 포천, 연천, 구리, 남양주, 가평)를 맡아야 했다. 북부지검, 북부지법, 의정부지검, 의정부지법, 경기북부청도 혜북라인 관할이었다. 관할이 넓다 보니 혜북에서는 총을 맞거나 취재지원을 나갈 때 이동시간도 굉장히 길었다.


첫날은 노원경찰서로 출근했다. 일보를 올렸는데 곧바로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선배는 다음 지시 대신 기사를 보내줬다. 당일 아침에 혜북 1진 선배 이름으로 나간 단독 기사였다. 일가족이 동반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장소를 특정해서 알려줄 테니 일단 의정부로 이동하라고 했다.


새로운 라인 첫 근무부터 의정부라니, 혜북라인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의정부로 향하며 지하철을 환승하던 중 문득 도봉산이 보였다. 산세와 날씨까지 금상첨화였다. 이렇게 좋은 날 나는 CC를 따러 가야 했다.



선배가 특정해 준 주소에 도착해 보니 기자는 나 혼자였다. 바로 CC를 확인하기 위해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를 했지만 회사에서 관리하는 주택이었다. 통상 회사에서 관리하는 주택의 경우 절대 기자들에게 cctv를 보여주지 않았다. 난감하던 찰나에 한 사람이 주택으로 들어왔다. 밑대기를 따려고 가서 말을 걸어보니 경기북부청을 출입하는 통신사 기자였다.


이 기자님은 능숙하게 우체통을 확인해 보더니 주민이 드나들 때를 틈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나도 따라 들어가 사건이 발생한 집 앞으로 갔다.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었고 경찰과 소방이 출동했을 때 문을 개방한 흔적도 보였다.



사건 현장임을 확인한 통신사 기자님은 바로 옆집 벨을 눌렀다. 주민 한 분이 나오셔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건에 대해 물으니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물론 나는 곧바로 밑대기를 확보했다. 사망한 가족들과 특별히 교류가 있지는 않았다고 했다. 평범한 가족처럼 보였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서 종종 엘리베이터에서 보면 인사를 했다고 했다.


주민은 아이의 아버지가 밤에 대리운전 일을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사건이 발생한 집 앞에 놓여 있는 전동휠을 보고는 가리켰다. 이걸 타고 밤에 나가는 걸 봤다고 했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내려오기 전 전동휠에 다시 눈길이 갔다. 여기저기 깨지고 긁힌 흔적이 많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버텨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보였다.



건물에서 내려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들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블랙박스에 기대를 걸어보려 했다. 그러던 중 누가 봐도 방송기자의 행색을 한 사람이 찾아왔다. 채널A 사건팀 조 기자님이었는데 이날 인연이 되어 이후 다른 현장에서도 뵙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기자님은 영상을 확보하면 풀하자는 제안을 했다. 현장에 기자들이 여럿 있는 경우 CC를 같이 따러 다니거나 확보한 영상을 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주차된 차량을 조 기자님과 나누어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사망한 가족의 차량이 발견됐다. 연락처를 확보해 선배에게 보고했다.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했는데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일가족이 사망한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 보니 괜히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주차된 차량 모두를 확인해 봤지만 영상은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조 기자님과 나는 경찰과 소방이 출동했을 것으로 보이는 방향으로 범위를 넓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출동하는 순간이라도 CC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골목 입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사건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이 흔쾌히 cctv를 보여주셨다. 카페 사장님은 필요한 일을 해줘서 고맙고,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우리에게 시원한 커피도 내어 주셨다. 조 기자님과 나는 역할을 나누어 여러 영상을 확보했다.


사실 이런 사건 현장에 처음 나가봤기 때문에 현장에서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볼 생각도, 경찰과 소방이 출동하는 영상이라도 확보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만난 통신사 양 기자님, 채널A 조 기자님 덕분에 이렇게 취재하고 CC를 따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장에 나가서는 자사 기자보다 타사 기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다.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타사 기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눈으로 보고, 그들에게 묻고 들으며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태원 참사 이후 특수본의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이 이뤄질 때 서울경찰청에서 마이크 잡이를 했던 적이 있다. 이때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YTN 박 기자님이 친절히 알려주셔서 무사히 마이크 잡이 데뷔도 할 수 있었다.


항상 기자는 현장을 발로 뛰며 배운다고 하지만 체감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라인부터 여러 현장을 나가기 시작하며 이 말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장을 한 번 나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나를 키우는데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이 타사 기자들이었다. 본인들도 겪어왔던 터라 수습이라고 말하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MBC 김 기자님은 현장에서 철수하며 파이팅을 외쳐주시기도 했다. 나를 키워준 여러 기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235858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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